개인적인 스터디그룹에서 용산을 공부했다. 발제자가 첫머리에 용산 일대를 찍은 항공사진을 한동안 보여준 뒤 다시 지도를 쥐어주고선 미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영역을 표시해보라고 했다. 방금 보았는데도 그릴 수가 없었다. 지리부도 속의 이국을 떠올리는 느낌이었다. 용산은 이처럼 우리의 기억 속에서 아련한, 너무나 먼 곳이다.
용산은 원래 무악재의 인왕산 줄기가 약현과 만리재를 거쳐 효창공원까지 용틀임하듯 뻗어내린 모습을 따서 지어진 이름이다. 지금 미군부대가 자리 잡은 곳을 비롯해 고층빌딩이 마천루를 이루고 있는 지역은 일제가 ‘신용산’이라고 부른 곳이다. 우리로서는 용산과 신용산의 경계가 모호하니 접근부터 혼란스럽다.
이런 용산이 묵직한 숙제를 던지고 있다. 내년 말 미군의 평택 이전이 끝나면 다시 서울의 품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기정사실인데, 이 땅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파행을 겪는 것이다. 공원 안을 개발하는 국토교통부와 공원 밖을 관리하는 서울시가 파트너십을 구축해 용산의 내일을 도모하기는커녕 서로 틀렸다며 날 선 공방을 벌이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둘 다 용산을 모르기 때문이다. 역사 이래 용산은 왕궁과 가까운 데다 한강을 통한 수운(水運)이 편해 외국 군대가 주둔하는 데 최적의 조건을 갖췄으며, 그래서 몽고군과 청나라군, 제국주의 일본 군대가 들어왔고, 종전 후에는 미군이 다시 이 공간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는 이력이 전부는 아니다.
더러는 금단의 영역에 갇혀 있던 건축물에 주목한다. 일제의 ‘만주사변 전사자 충혼비’가 ‘미8군 전몰자 기념비’로 바뀐 이야기, 미소공동위원회의 소련 측 숙소, 태평양 전쟁 때 우리 국민의 강제 징집에 사용되던 연병장, 메릴린 먼로가 위문 온 캠프킴, 국가 단위의 기우제가 올려지던 남단(南壇) 등 장소에 얽힌 사연을 나열하면서 복고를 주창한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용산의 미래를 논의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서울의 노른자위 땅 108만평을 온전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동안 아무도 제대로 보거나 살피거나 연구하지 못한 미답의 국토다. 최근 용산공원추진위원회라는 곳에서 내놓은 기본 설계안은 지극히 건조하고 피상적이다. 용산이 지닌 인문사회학적 함의는커녕 흙이나 제대로 만져나 봤는지 궁금하다.
용산의 다양한 얼굴을 간과하는 것도 문제다. 용산은 담장 속의 미군부대만 있는 게 아니다. 가령 옛 중앙대 용산병원은 러일전쟁에서 이긴 일본이 철도 노동자를 위해 건립한 철도병원이었고, 한강인도교와 신의주철교를 놓은 ㈜간조 경성지점 건물이 원형대로 남아 있다. 지금 신광여고 자리는 연합군 포로수용소 터, 해방촌으로 올라가는 ‘108 하늘 계단’은 경성 호국신사가 있던 자리였음을 잊고 있다.
용산에 대한 시공간적 이해는 다른 곳과 근본적으로 달라야 한다. 무엇보다 한국사와 세계사가 중첩된 곳인 만큼 부처별 땅 따먹기는 금물이다. 드래곤힐호텔이나 한미연합사, 국방부 등이 잔류하면 남북으로 허리가 댕강 잘리는 것은 물론 쥐가 수박을 야금야금 파먹는 기괴한 모습이 되고 만다. 생태공원도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숲이 좋긴 해도 식민과 냉전으로 얼룩진 지문을 드러내는 것이 우선이다. 그게 센트럴 파크와 다른 점이다.
시간도 느긋하게 다가서길 권한다. 문화재와 환경조사에만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 영화 ‘괴물’에서 힌트를 주었듯 토양의 중금속 혹은 독극물 오염 부분도 검증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군이 떠난 후 시민들이 충분히 용산을 알고, 느끼고,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다. 하야리아 부대가 떠난 자리를 ‘시민공원’이라는 정체불명의 공간으로 바꾼 부산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손수호(객원논설위원·인덕대 교수)
[손수호 칼럼] 용산의 地文
입력 2016-10-11 18: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