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을 깊이 관찰해 보면 자주 비본질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본질과 비본질을 바로 잡으라고 요청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바리새인들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그들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비록 그들이 두려움의 대상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사람들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누구를 두려워하고 계십니까. 누구를 두려워하면서 살아오셨습니까. 사람을 두려워하며 사람을 지나치게 의식하면서 살아오셨습니까. 그것은 결코 본질이 아닙니다. 비본질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사람은 권력이 있어 보이고 힘이 있어 보이지만 그들은 사랑의 대상이 될지언정 두려움과 무서움의 대상은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바리새인들로부터 뭔가 인정을 받아야지 도리어 배척을 받으면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주님이 깊이 아시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으로부터 받는 인정을 본질삼고 나를 안다는 것을 거부하면 나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너희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비록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못 받는 한이 있어도 나를 세상에 알리고 세상에 증거하는 자로 산다면 나도 하나님 앞에서 너를 인정하리라.” 무엇이 본질이냐의 문제입니다.
아무리 사람이 우리에게 주는 인정이 위대하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것은 본질일 수 없습니다. 궁극은 마지막 날 최후의 순간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질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섬기며 봉사할 때, 어려운 이웃을 위해 헌신할 때 누구도 내게 와서 손을 잡아주며 수고한다고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고민하고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본질은 결국 주님이 우리를 인정하심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신 것을 기억하시고 주님이 보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인정에 연연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인정에 관심을 가지세요. 하시던 봉사와 헌신, 수고의 일을 계속 하십시오. 결국 최후의 날에 주님은 우리를 인정하시며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본질은 소유에 있지 않고 생명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본질 삼아야할 생명은 어떤 생명을 말합니까. 우리가 본질 삼아야할 생명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우리가 본질 삼아야할 것은 영원에 있고 영원한 생명에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가 찾는 영원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우리가 만나야할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우리의 본질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붙잡고 있다는 확신이 있으십니까. 운명은 예수님의 손에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여러분의 운명을 맡기십시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본질 삼는 것이 지혜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인정을 본질 삼는 것이 지혜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본질 삼는 것이 지혜입니다. 이렇듯 본질을 본질로 삼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뜻입니다. 비본질을 본질 삼는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이 뒤틀리기 시작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부여잡고 승리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을 축원합니다.
김선규 목사 (성남 성현교회)
◇약력=△총신대 신대원 졸업 △총회세계선교회(GMS) 이사장 역임 △현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총회장
[오늘의 설교] 본질과 비본질
입력 2016-10-11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