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2016 백남기·1996 노수석 사건은 ‘판박이’
입력 2016-10-11 04:23
농민 백남기씨 사망 사건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20년 전 시위 도중 사망한 노수석씨 사건이 재조명받고 있다. 시위 도중 쓰러진 뒤 사망했다는 점, 부검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계속됐다는 점 때문이다.
1996년 연세대 법학과에 재학 중이던 노수석(당시 20세)씨는 3월 29일 종묘에서 열린 김영삼 대통령 대선자금 공개 시위 도중 경찰의 진압을 피하다 사망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노씨에 대한 부검을 한 뒤 사망원인을 ‘심근병증으로 인한 급성심장사’로 결론 내렸다. 노씨의 심장이 일반인보다 다소 비대하고, 이런 심장에 이상이 생겨 급사했다는 내용이다.
다만 부검감정서에는 “등 부위에서 보이는 피하출혈은 ‘타력(打力)’에 의해 생겼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도 적혀 있었다. 핵심적인 쟁점은 노씨가 지병 때문에 사망한 것인지, 시위 과정에서 벌어진 상황 때문에 사망한 것인지 여부였다. 노씨 부검에 관여했던 국과수 서중석 과장은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심근병증이 있다 하더라도 비를 맞아 체온이 내려가고 극심한 공포상태에서 전력 질주하였다면 그것이 심근경색(심장마비)의 원인이 되었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당시 재판부는 유가족과 정부의 화해를 권고했지만,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부검감정서’를 주요 증거로 인정해 원고 패소 판결했다.
당시 노씨가 참여했던 시위에는 6000여명의 경찰 병력이 동원돼 진압작전을 펼쳤고, 당시 진압에 참여했던 전경은 의문사진상조사위원회에 “경찰의 집단 폭행이 있었다”고 익명으로 제보하기도 했다.
노씨 사건과 백남기씨 사건에 대한 경찰 대응도 비슷한 방식을 보였다. 노씨 사건 당시 중부경찰서는 “자체정밀조사 결과 시위 해산 과정에 문제점은 없었다”고 설명했고, 강신명 전 경찰청장도 백씨 사망 관련, “시위진압에 불법성은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사망 이후 부검을 요구하는 것도 비슷한 수순이며, ‘사인’을 두고 의견이 엇갈리는 점도 겹친다. 노씨 유족들은 “심장이상을 한 번도 자각해본 적이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노씨의 사인은 급성심장사로 결론 났다. 다수 전문가들이 백씨의 사망원인을 물대포로 인한 ‘급성경막하출혈’, 즉 ‘외인사’라고 보고 있지만 주치의는 ‘급성신부전’으로 인한 ‘병사’라고 기록했다.
노수석추모사업회 이사장 박병언 변호사는 10일 “백남기 농민의 경우 직접적인 가해행위가 영상 증거로 나와 있다”며 “노수석씨의 경우 그런 증거들이 없었다”고 전했다. 노씨의 아버지 노봉구(74)씨는 “부검이 더 정확할 것이라고 판단했던 게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