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또 안 당한다… 中 철선 ‘충돌 공격’에 실탄 대응 긴박
입력 2016-10-11 00:08
“○○(음어) 나와라.”
“○○이다.”
“(레이더를 보면서) 서해 EEZ(배타적 경제수역) 경계에 있는 중국어선 중에 철선(鐵船)이 보입니까(중국 어선은 ‘철갑판’을 두르고 있다고 해서 철선으로 불린다).”
“철선이 몇 척 있습니다.”
“언제든지 우리 구역으로 들어올 수 있으니 예의주시하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오버.”
“만일 해역 침범하면 (고속)단정을 즉각 출동시켜 초반에 상황을 장악하십시오.”
10일 오후 인천해양경비안전서 상황실. 중국어선들의 ‘침몰 공격’ 이후여서인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인근 해역에서 작전을 수행 중인 3000t급 경비함에 설치된 영상장비를 통해 들어온 현지 장면들이 실시간으로 대형 화면에 클로즈업됐다. 쉴 새 없이 무전이 오갔다. 무전이 끝나자 ‘부응, 부응, 부응’ 하는 경비함의 굉음도 들렸다.
음어 사용은 준전시상태를 의미한다고 상황실 관계자가 귀띔한다. 그만큼 지금이 전쟁을 방불케 하는 중대한 상황이라는 얘기다. 서해 중국어선 불법조업 단속 현장은 흔히 ‘총성 없는 전쟁터’로 비유된다. 이젠 말 그대로 전쟁터나 다름없는 곳이 돼 버린 것이다.
중국어선의 ‘충돌 공격’으로 우리 해경 고속단정이 침몰한 사고 현장 인근은 경비가 대폭 강화됐다. 해경은 인천 옹진군 소청도 남서방 해역 인근에 3008함, 1002함, 1506함, 1507함 등 3000t급 경비함정 4척을 배치했다고 밝혔다. 이는 평소보다 2척이 추가 배치된 것이다.
‘단속 경찰이 죽어도 상관없다’는 식의 중국어선의 ‘막무가내식’ 폭력에 대한 해경대원의 무장도 배가됐다. 해경은 앞으로 중국어선이 도끼와 칼 등 흉기를 들고 대원들을 살해하려고 덤빌 경우 정당방위 차원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총기를 사용하도록 했다. 고속단정 1척에 편성되는 해상특수기동대 9명은 개인별로 K-5 권총, K-5실탄 10발을 보유하고 있다. 또 각 팀에는 20㎜ 발사기 2대와 고무탄 36발, 단발 다목적 발사기 2대와 40㎜ 스펀지탄 20개, 전자충격 총 2개, 최루탄 8발 등 다양한 단속 장비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첨단무기로 중무장해도 현장에서 총기나 무기를 실제로 활용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지난 7일 중국어선의 공격을 받아 해경 고속단정이 침몰한 상황에서도 보유 무기를 적극 활용해 어선을 제압하는 강경책보다는 ‘전술상 후퇴’의 길을 택했다.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해상주권 수호’를 위해 적극적으로 극단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해경 관계자는 힘주어 말했다. 고속단정 침몰 이후 신변의 위협을 느끼면 실탄을 쏘도록 지침이 하달된 것이다. 해경의 해상 총기사용 가이드라인에는 ‘선원이 위험한 물건을 이용해 단속경찰을 공격하거나 2명 이상이 집단으로 폭행하는 등 정황이 급박해 총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자신 또는 타인의 생명·신체의 방위나 진압할 방법이 없을 경우’ 개인화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2008년부터 지금까지 중국어선의 폭력저항에 숨진 해경은 2명, 부상자는 73명이었으나 현장에서 이 가이드라인은 사실상 유명무실화된 상태였다.
고속단정을 들이받아 침몰시킨 중국어선의 실체도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국민안전처 해양경비안전본부는 10일 용의 선박이 산둥성 선적이라고 중국 측이 통보해 왔다고 밝혔다.
사고 이후에도 EEZ 외측 경계 수역에는 중국어선 60여척이 기회를 노리며 조업을 하고 있다고 해경은 설명했다. 언제든지 철선을 무기화해 불법 조업을 강행할 태세라고 한다.
당시 침몰된 고속단정에서 가까스로 구조된 조동수(50) 경위는 “중국어선의 만행 후 현재 인천항 해경전용부두로 돌아와 교대근무를 위해 준비하고 있다”며 “통상 작전지역에 나가면 7박8일 동안 불법조업 중인 중국어선들과 전쟁을 치른다. 언제든지 달려갈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국어선들이 철선을 무기화하더라도 대원들은 매뉴얼에 따라 강력 대처해 해상주권을 중국에 넘겨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가 공권력이 중국어선에 처참히 무너지는 장면을 다시는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무전 너머로 경비함의 힘찬 ‘기적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소청도=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