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방산비리 또 무죄 선고… 수사 부실? 잣대 엄격?
입력 2016-10-11 04:22
법원이 최근 방위산업비리(방산비리) 관련 피고인들에게 잇따라 무죄를 선고하고 있다. 검찰의 방산비리 수사가 부실했던 것일까, 법원이 군조직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일까.
지난 8월 이후 법원이 방산비리 관련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한 사건들의 판결 요지를 살펴보면 ‘검찰이 범죄 혐의 입증을 위해 제시한 증거물이나 증언에 문제가 있다’는 취지가 많다. 법리 다툼이 심한 직권남용, 허위공문서 작성 등의 혐의들이 대부분 무죄가 선고되는 상황이다.
서울중앙지법(형사18단독)은 북한군 개인화기에 뚫린다는 논란을 빚은 불량 방탄복을 납품한 혐의로 기소된 군수업체 S사 대표 등 3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10일 밝혔다. 검찰은 S사가 납품 실적을 허위로 꾸미는 수법으로 심사를 통과했다고 봤지만, 1심 법원은 “S사가 허위서류를 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형사22부)은 지난 8월에도 군수품 납품가를 부풀려 방위사업청으로부터 돈을 뜯어낸 혐의로 기소된 무기 중개업체 S사의 신모 전 이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신씨와 관계사 직원들이 검찰에서 혐의를 자백한 내용을 법정에서 뒤집은 것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방산비리 혐의로 기소된 거물급 장성들도 최근 무죄선고를 받아 검찰이 체면을 구겼다. 대법원은 지난달 23일 통영함 납품비리 사건에 연루돼 재판을 받아온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역시 통영함 납품비리 혐의로 기소됐던 정옥근 전 해군참모 총장도 지난 8월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법원은 검찰이 범죄 혐의와 관련해 제시한 여러 정황 증거를 인정하지 않았다.
법조계와 군 안팎에서는 정치적 이유 등으로 검찰이 방산비리 수사를 밀어붙이다보니 무죄 판결이 늘고 있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방산비리 수사는 2014년 10월 박근혜 대통령이 방산비리를 ‘이적행위’로 규정하면서 본격화됐다. 당시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터져 나온 통영함 비리 이후 검찰과 경찰, 국방부 등 사정업무와 관련된 정부기관이 총동원된 방위산업비리 합동범죄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이 출범했다. 합수단은 출범 후 1년 동안 1조원대 방산비리 혐의를 포착하는 성과도 거뒀지만, 일부 무리한 수사 논란도 일으켰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방산비리 수사는 대통령의 관심과 여론의 지지를 얻다보니 검찰이 서둘러 성과를 내기 위해 기소를 밀어붙인 측면도 있다”면서 “군 비리 관련 첩보만 입수해도 성급하게 범죄로 규정하고 수사부터 나선 경우도 많았다”고 전했다.
반면 검찰에서는 법원이 ‘상명하복’ 성격이 강한 군 문화의 특수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볼멘 목소리가 나온다. 군에서 이뤄지는 중요 결정은 최상위 지휘관의 암묵적인 지시나 동의 없이 이뤄지기 어렵다. 법원이 이런 군의 특징을 고려하지 않고 증거 채택 기준 등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검찰 관계자는 “방산비리 재판은 군 조직만의 특수성과 무기거래의 전문성 등을 법원이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용택 기자 ny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