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과태료 재판 ‘자료 부실’ 땐 처벌 안한다
입력 2016-10-09 18:11 수정 2016-10-09 21:29
법원이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의 과태료 재판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 자료가 부실하면 재판을 하기 힘들다는 내용이 골자다. 기존 과태료 재판의 기준과 절차를 참고할 방침이다.
법원은 김영란법을 위반한 공직자의 소속기관이 위반 내용을 법원에 통보할 때 증거자료가 부실하면 보완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법원은 소속 기관장이 보완 요구에 따르지 않거나 보완 자료가 부실하면 형사재판의 ‘무죄’와 비슷한 ‘불(不)처분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증거자료가 확실하면 서류 검토 등 약식 절차로 과태료를 결정하고, 정식 재판이 필요하다고 보면 심문 기일을 연다. 정식 재판 시 위반한 사람에게 충분한 소명 기회를 주고, 신고자 신원 등은 최대한 보호할 예정이다.
법원 “증거자료 부실 시 불처분”
대법원은 지난 7일 과태료 재판 법관 등 판사 270여명이 모인 내부 전산망에 김영란법 시행에 따른 ‘과태료 재판 절차 안내자료’를 게시했다고 9일 밝혔다. 이 자료는 지난 7월 수도권 소재 법원의 과태료 담당 법관 10여명으로 구성된 ‘과태료 재판 연구반’이 수차례 논의 끝에 작성한 것이다. 김영란법 시행에 따른 재판의 혼선을 막겠다는 취지다.
법원은 ‘김영란법 과태료 재판’도 기존 과태료 재판과 동일한 절차로 진행한다. 김영란법을 위반한 공직자의 소속 기관장은 위반 내용을 조사하고, 이를 관할 법원에 통보해야 한다. 여기서 관할 법원은 위반자의 주소지 소재 지방법원이나 지원(支院)이 된다.
법원은 기관장이 제출한 증거자료 등을 검토하는 ‘약식 절차’로 과태료를 정하되, 위반한 사람이 이의신청을 하거나 정식 재판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법정에 불러 심문한 뒤 결정할 예정이다. 1심은 지방법원 단독판사가, 항고심은 지방법원 항고부가 담당한다.
특히 법원은 관련 기관에게 ‘증거자료 보완’을 적극 요구할 방침이다. 김영란법과 그 시행령은 ‘소속 기관장은 위반 내역을 법원에 통보할 때 위반 사실을 구체적으로 특정하고, 증거자료를 제출토록’ 규정한다. 법원은 이 자료를 바탕으로 과태료를 부과할지, 부과한다면 액수를 얼마로 할지 결정한다. 만약 이 자료가 부실하다면 소속 기관장에게 “제대로 보내라”고 요구하겠다는 것이다.
법원은 기관장이 계속 부실한 자료를 제출하거나, 제출 요구를 따르지 않으면 ‘불처분’ 결정을 내릴 방침이다. 증거가 불충분하니 과태료를 부과할 수 없다는 의미다. 법원 관계자는 “신호위반 등 다른 과태료 사안에선 위반 장면이 촬영된 사진·동영상 등이 요건으로 규정돼 있고 관련 기관도 업무 경험이 풍부하다”며 “반면 김영란법은 이런 절차를 처음 겪는 공공기관이 많고, 어떤 자료를 보내야 하는지도 규정돼 있지 않아 (이 부분을) 알려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법원이 요구할 구체적인 자료는 ①위반자 인적사항 ②위반 일시·장소·방법·적용법조 ③과태료 판단·통보 이유 ④당사자 경위서와 사진·동영상 등이다. 법원 관계자는 “이 중 일부 자료는 법원으로 사건이 넘어온 시점에는 확보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며 “소속기관이 초기에 자료를 잘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과태료 0건…“권익위 상황 주시”
법원은 김영란법의 과태료 액수 기준 등 구체적 사안은 ‘좀 더 상황을 지켜보고 결정하자’는 입장이다. 현재까지 김영란법 과태료 사안으로 법원에 접수된 사건이 한 건도 없어서다. 법원 관계자는 “김영란법 과태료 액수는 최대 3000만원 또는 수수금지 금품 액수의 5배까지 가능하다”며 “사건마다 구체적 내용이 다 다를 것 같다. (현재로서는) 법관이 사건별로 판단을 내려야 할 사안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과태료 재판 연구반’은 다음 달까지 과태료 액수를 결정할 때 고려할 요소와 공정성 확보 방안 등을 제시키로 했다. 권익위에 접수되는 김영란법 위반 현황도 주시할 예정이다.
법원 관계자는 “권익위에 신고되는 전국 현황을 보고 유의미한 변동이 있는지 살펴볼 예정”이라며 “만약 신고 건수가 많지 않다면 자체 안내홍보만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일러스트=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