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어’ 발표 올해부터 중단… 왜?

입력 2016-10-10 00:01
국립국어원이 1994년부터 매년 발표했던 ‘신어’를 올해부터 외부에 발표하지 않기로 내부 방침을 세웠다.

신어에 성차별적인 단어와 비속어가 포함돼 있다는 지적이 계속되자 신어 발표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사회 비판적인 신어들을 발표하는 데 ‘정치적 부담’을 느꼈던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국립국어원 관계자는 9일 “신어가 사회 현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판단 아래 매년 신어 목록을 발표했지만, 정치적인 오해와 논란이 많아 연구 목적으로만 제공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유기홍 전 의원은 신어 등록 문제를 제기했다. 유 전 의원은 “신어 가운데 ‘된장녀’처럼 여성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단어가 많다. 반면 ‘이주노동자’는 등록되지 않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앞서 국립국어원은 지난해 3월 ‘일자리 절벽’ ‘눔프족’(복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복지비용을 위한 증세에는 반대하는 사람) 등 334개의 ‘2014년 신어’를 발표했다.

2007년에도 신어를 둘러싼 논란이 일었다. 국립국어원이 2003년 신어로 등록한 ‘놈현스럽다’가 적절했느냐는 지적이 뒤늦게 제기됐었다. 단어는 ‘기대를 저버리고 실망을 주는 데가 있다’는 뜻으로 당시 이라크 파병을 결정한 노 전 대통령을 비하한 것에서 유래됐다.

일각에서는 신어발표 중단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인 국립국어원이 ‘헬조선’ ‘N포 세대’와 같이 사회 비판적인 단어들을 신어로 발표하기 부담스러웠던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헬조선’은 경제난과 취업난 등으로 한국에서 살아가기 힘든 청년들이 한국을 지옥에 빗댄 단어로 올해 크게 유행했다. ‘N포 세대’는 2011년 신어로 등록된 ‘삼포 세대’(연애·결혼·출산 포기)와 2014년 등록된 ‘오포 세대’(연애·결혼·출산·인간관계·주택구입 포기)의 확장판이다. 국립국어원 관계자는 “사회비판적인 단어들이 신어로 언급되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면, 선정 기준 등을 두고 정치적인 논란이 제기될까 봐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국립국어원은 그동안 제기된 ‘신어 논란’이 신어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신어는 말 그대로 ‘새로 등장한 단어’로 사회 현상을 반영하는 것일 뿐인데 마치 곧 표준어로 등록되는 것처럼 오해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2012년부터 신어 조사 연구를 맡고 있는 남길임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신어는 사회 현상을 반영하기 때문에 가치중립적으로 연구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며 “이를 정치적으로 접근하면 신어 수집 자체가 왜곡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립국어원은 1년 동안 공신력 있는 온·오프라인 대중매체 140여개를 대상으로 ‘자동 신어 조사기’라는 자체 프로그램으로 신어를 수집한다. 이 가운데 특정인을 지나치게 비하하는 경우 등은 논의를 거쳐 제외하고 매년 신어 목록을 발표한다. 이후에도 신어들이 지속적으로 사용되면 국립국어원은 심사를 거쳐 신어를 표준어로 등재할 수 있다. 신어가 표준어로 등록되기까지는 보통 10년 정도 걸린다. 김정선 한양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신어는 대중의 사회의식을 반영하고 이를 통해 사회를 바라볼 수 있는 하나의 창구”라며 “정치적 논란 등을 고려해 매년 하던 발표를 하지 않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국립국어원은 신어 조사와 별도로 지난 5일부터 ‘우리말샘’이라는 사용자 참여형 사전 사이트를 시범운영하고 있다.







글=김판 기자 pan@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