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 27일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부시스타디움.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4차전이 열린 이곳에서 보스턴 레드삭스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3대 0으로 격파하고 우승했다. 아메리칸리그 와일드카드로 어렵게 합류한 포스트시즌에서 월드시리즈까지 파죽지세로 달려갔고, 당시 메이저리그 최강이었던 세인트루이스를 4전 전승으로 압도했다. 또 100주년을 맞은 월드시리즈에 세운 기념비적 우승이었다.
하지만 더 감격적인 사연은 ‘밤비노(베이브 루스의 별명)’와 마침내 작별을 고했다는 것이었다. 보스턴은 1918년까지 월드시리즈를 5차례 정복한 명문이었지만 그 이후부터 정상을 탈환하지 못했다. 호사가들은 1920년 베이브 루스를 라이벌 뉴욕 양키스에 트레이드한 보스턴의 오판을 오랜 부진 원인으로 지목했다. 보스턴을 85년 동안 괴롭혔던 ‘밤비노의 저주’였다.
보스턴을 저주에서 구한 영웅은 당시 31세로 풋내기에 불과했던 테오 엡스타인(43) 단장과 테리 프랑코나(57) 감독이었다. 세이버매트릭스(Sabermetrics) 신봉자인 엡스타인 단장이나 선수단을 파격적으로 운영한 프랑코나 감독 모두 선수와 팬들의 반발을 살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이런 냉정함과 상식파괴는 ‘저주사냥꾼’으로서 훌륭한 자질이었다. 두 사람은 이제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오래 월드시리즈 우승을 경험하지 못한 두 팀에서 새로운 저주와 싸우고 있다.
프랑코나 감독은 2013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선택했다. 클리블랜드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할리우드 코미디영화의 소재로 쓰일 정도로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의 만년 꼴찌팀이었다. 마지막 월드시리즈 우승은 1948년. 시카고 컵스(1908년)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랜 기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지 못한 팀이다.
클리블랜드를 68년 동안 휘감은 징크스는 ‘와후 추장의 저주’다. 클리블랜드는 메이저리그 사상 최초의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 출신 선수였던 루이스 소칼레식스를 기리기 위해 1915년 팀 명칭을 스파이더스에서 인디언스로 변경했다. 하지만 1951년 마스코트인 와후 추장 디자인을 바꾸면서 엉뚱한 논란에 휘말렸다.
클리블랜드는 와후 추장을 더 친근한 캐릭터로 만들기 위해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도안을 바꾸고 피부색도 빨강으로 교체했다. 하지만 이 결정은 인종차별 논란에 휘말렸다. 클리블랜드가 최근 모자에서 캐릭터를 빼고 팀 명칭의 이니셜인 ‘C’를 새긴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클리블랜드 팬들은 반세기를 넘긴 부진을 와후 추장에 대한 희화화로 인디언들의 원한을 샀다며 ‘와후 추장의 저주’로 부른다. 클리블랜드가 프랑코나 감독을 영입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프랑코나 감독이 지휘한 클리블랜드는 올 시즌 가장 강력한 ‘돌풍’을 일으킨 팀이다.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에서 94승67패(0.584)로 1위를 차지했고, 지난 8일까지 보스턴과 가진 홈 2연전을 모두 승리해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제 1승만 더하면 챔피언십시리즈로 넘어간다.
엡스타인 단장이 2011년부터 지휘한 시카고 컵스 역시 ‘염소의 저주’를 깨기 위해 큰 발걸음을 떼고 있다. 컵스는 1945년으로부터 71년 동안 챔피언십시리즈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염소의 저주는 당시 월드시리즈가 열린 홈구장 리글리필드로 염소를 동반했다가 입장을 거부당한 관중이 “월드시리즈로 다시는 진출하지 못할 것”이라고 퍼부은 악담에서 비롯됐다. 컵스의 마지막 월드시리즈 우승은 1908년.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오래 우승하지 못한 팀이다.
엡스타인 단장은 컵스가 하위권을 맴돌던 2014년부터 최고 유망주들을 육성했다. 그러면서 검증된 투수를 공격적으로 영입했다. 양키스에 선수 4명을 보내고 평균시속 160㎞대 강속구를 뿌리는 마무리투수 아롤디스 채프먼을 영입한 4대1 트레이드가 대표적이다.
엡스타인 단장 아래에서 컵스는 올 시즌 메이저리그 30개 팀 중 유일하게 6할대 승률을 찍고 최고의 강팀으로 올라섰다. 염소의 저주를 넘어 108년 만에 우승도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컵스는 9일 리글리필드에서 열린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 2차전에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5대 2로 격파했다. 클리블랜드와 마찬가지로 챔피언십시리즈까지 1승만을 남기고 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두 ‘저주 사냥꾼’, 누가 더 셀까
입력 2016-10-10 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