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흥철(35·비스타케이호텔·사진)은 다섯 살 아들 송현이를 꼭 안고 있었다. 경기에 출전하기 위해 새벽에 나설 때마다 “아빠, 파이팅!”이라고 응원해 준 아들 덕분에 우승한 것 같았다. 송현이는 태어나자마자 심장과 폐로 가는 혈관이 막히는 병을 앓았다. 2013년 큰 수술을 받고 호전됐지만 아직 완치되진 않았다.
주흥철은 9일 경기도 용인 88컨트리클럽(파71·6천766야드)에서 열린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현대해상 최경주인비테이셔널(총상금 5억원, 우승상금 1억원) 마지막 날 4라운드에서 버디 7개와 더블보기 1개를 기록했다. 최종 합계 13언더파 271타를 적어낸 주흥철은 미국프로골프협회(PGA)투어에서 활동하는 김시우(21·CJ대한통운)와 문도엽(25·이상 12언더파 272타)을 1타 차로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 9월 열린 군산CC 전북오픈에서 정상에 오른 주흥철은 시즌 2승을 올렸다.
선두에 3타 뒤진 공동 4위에서 출발한 주흥철은 전반에 4타를 줄이며 우승 경쟁에 뛰어들었다. 후반 들어 파 행진을 하던 주흥철은 13번홀(파5) 버디를 시작으로 3개 홀 연속 버디를 낚았다. 김시우에 3타 앞선 채 단독 선두를 질주하던 주흥철은 17번홀(파4)에서 티샷을 경기구역 밖으로 날려 보내는 OB 샷으로 위기를 맞았다. 네 번째 샷으로 볼을 그린 위에 올라선 주흥철은 더블보기를 범했다. 18번홀(파4)에서도 위기가 찾아왔다. 두 번째 샷을 그린 위에 올리지 못한 것이다. 어프로치 샷을 홀 1.2m에 떨어뜨린 주흥철은 파 퍼트에 성공한 뒤 우승을 예감한 듯 주먹을 불끈 쥐었다.
우승 뒤 주흥철은 “아들과 같은 병을 앓는 아이들을 위해 상금의 일부분을 기부하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기쁘다”며 활짝 웃었다.
한국 남자골프의 기대주 김시우는 18번홀에서 1.5m 버디 퍼트를 놓친 바람에 승부를 연장전으로 끌고 가지 못했다. 김시우는 2년 전 이 대회에 출전해 공동 32위에 머물렀지만 이번엔 한결 성숙해진 모습으로 PGA 투어 차세대 주역임을 증명했다.
PGA 투어 우승이 꿈이던 그는 고교 때 미국무대의 문을 두드렸다. 2012년 17세 5개월 6일의 역대 최연소 나이로 PGA 퀄리파잉 스쿨을 통과했다. 하지만 만 18세가 되기 전이어서 PGA 투어 카드를 받을 수 없었다. 6개월 동안 PGA 투어에 나오지 못한 그는 이듬해 고작 8개 대회에 출전하는데 그쳤고 7차례 컷 탈락이라는 쓴 맛을 봤다. 2014년 2부 투어(웹닷컴 투어)로 내려간 그는 19개 대회에 출전해 4차례만 컷 통과하는 등 극심한 성장통을 겪었다.
흔들리던 김시우를 잡아 준 사람은 아버지였다. 그는 ‘괜찮다’며 격려해 준 아버지 덕분에 PGA 투어를 향한 도전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는 이번 시즌 다시 PGA 투어에 돌아와 지난 8월 윈덤 챔피언십에서 PGA투어 첫 승을 거뒀다. 한국인 최연소 우승 기록이었다.
PGA 투어에서 8승을 거둔 최경주(46·SK텔레콤)는 “김시우는 내 기록을 깰 강력한 후보”라며 “어린 나이에도 310∼320야드의 장타에 탁월한 재능과 정신력을 겸비했다”고 칭찬했다.
대회 호스트인 최경주는 최종 합계 9언더파 275타(공동 6위)로 대회를 마쳤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주흥철 시즌 2승 퍼팅
입력 2016-10-09 2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