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를 대표하는 배우 이병헌(46)과 손예진(본명 손언진·34)이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찾았다. 영화계 보이콧으로 예년보다 썰렁했던 올해 영화제에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
두 배우는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두레라움 광장에서 지난 7, 8일 각각 진행된 ‘오픈토크-더 보이는 인터뷰’에서 관객을 만났다. 당초 해운대 비프 빌리지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던 행사는 개막 전날 불어 닥친 태풍 ‘차바’ 여파로 장소를 변경했다. 모래사장 위 파도소리와 함께하는 낭만은 없었지만 인조 잔디 위 두런두런 모여 앉은 이들의 얼굴에는 반가움과 기쁨이 어려 있었다.
#믿고 보는 배우, 이병헌
이병헌은 누구보다 바쁜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시작부터 느낌이 좋았다. 지난해 말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 사상 최고 흥행을 기록한 ‘내부자들’에서 물 만난 듯한 연기를 펼쳤다. 재치 있는 명대사로 사랑받기도 했다. “난 저기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 잔 할라니까.” 직접 들려달라는 팬들의 요청에 그는 빼지 않고 능청스럽게 응했다.
‘내부자들’은 사회 비리를 적나라하게 그린 범죄액션 영화다. 이런 장르가 주를 이루는 최근 흐름에 대해 이병헌은 “사회 분위기에 많은 영향을 받는 것 같다. 따뜻한 휴먼드라마나 마음을 놓고 웃을 수 있는 코미디가 많이 나올 수 있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한국을 넘어 할리우드에서 활약 중인 그는 올해만 ‘미스컨덕트’ ‘매그니피센트7’ 두 작품을 선보였다. 미국 아카데미(오스카)상을 주관하는 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회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이병헌은 “할리우드에서 일한다는 건 더 많은 사람에게 내 연기를 보여줄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다시 도전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는 대외적인 대답”이라면서 가슴에 품어뒀던 속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개인적으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크다”며 “영화 광(狂)이셨던 아버지가 지금의 절 보면 얼마나 자랑스러워하실까. 그런 생각을 하면 굉장히 짜릿하고 힘이 난다”고 얘기했다.
이병헌은 ‘믿고 보는 배우’라는 말을 들을 때 가장 행복하단다. “늘 기대되고 믿고 보는 배우. 그 말이 제게 적용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기분 좋아요. 배우로서 그보다 더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말이 없는 것 같아요. 오래도록 그렇게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오는 12월 강동원·김우빈과 호흡을 맞춘 ‘마스터’를 선보인다. 공효진과 함께한 ‘싱글라이더’ 개봉도 앞두고 있다. 조만간 ‘남한산성’ 촬영에 들어간다.
#소처럼 일 해줘 고마운, 손예진
손예진은 쉼없이 연기하기로 여배우 중 독보적이다. 꾸준히 색다른 모습으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올해 스릴러 장르인 ‘비밀은 없다’와 역사극 ‘덕혜옹주’가 연달아 개봉했다.
손예진은 “‘비밀은 없다’는 마니아층이 좋아해주셨고 ‘덕혜옹주’는 대중적으로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셨다”며 “더 애착이 가는 작품을 고르기는 어렵다. 둘 다 저에게는 아픈 손가락”이라고 말했다.
그에게는 ‘소예진’이라는 별명이 있다. 소처럼 열심히 일한다는 뜻이다. “어감이 예쁘진 않은 것 같다”고 불평하던 손예진은 “우직하고 묵직하게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의미로 좋은 별명을 선물해주신 것 같아 기분이 좋다”며 웃었다.
십여년 전 ‘연기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던 영화과 학생이 어느덧 명실상부한 최고의 여배우로 우뚝 섰다. 스스로 느끼는 감회가 남다를 테다.
“가끔은 고통스럽죠. 생각했던 것만큼 많은 사랑을 받지 못했다거나 연기가 너무 힘들 때,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해요. 매너리즘에 빠지는 순간이 참 많아요. 그럼에도 계속 나아갈 수 있는 건, 내 안에 여전히 열정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화려하게만 보이는 그의 일상은 평범하다. 집에 있는 게 제일 편한 ‘집순이’다. 티셔츠와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하루 종일 쇼파에 앉아 TV를 볼 때가 많다. 절친한 동료들을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대화 나누는 게 소박한 낙이다.
손예진은 “배우는 멘탈이 강하지 않으면 하기 힘든 직업인 것 같다”면서 “아픔이 있지만 혼자 담아두려 하지는 않는다. 가족·지인 등 가까운 사람들에게 얘기하며 치유를 받는다. 해결책을 찾지 못하더라도 그 자체로 위로가 되더라”고 했다.
부산=글·사진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믿고 보는 배우, 이병헌·손예진을 만나다 [21회 BIFF]
입력 2016-10-09 19:14 수정 2016-10-10 1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