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면 엄마로부터 밤을 받는다. 엄마가 직접 산에 가서 털고 주워 온 것이라 한 톨이라도 버리기 아깝다. 그래서 이 밤을 어떻게 하면 알뜰하게 다 먹을 수 있을까 궁리하다 작년부터 ‘밤조림’을 하기 시작했다. 나의 밤조림은 겉껍질을 벗기고 속껍질은 남긴 채 소다에 담갔다가 떫은맛을 뺀 후 조리는데, 그렇게 하면 저장성도 좋고 깊은 맛이 난다. 그래서 속껍질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겉껍질을 까야 한다. 올해도 밤조림을 하기 위해 밤을 손질하는 중이었다. 겉보기엔 실하고 예쁜 밤일수록 껍질을 까다 보면 벌레 먹은 밤이 많았다. 열 개면 두세 개가 그런 지경이었다. 어떤 밤은 겉은 진짜 멀쩡한데 완전히 밤벌레의 방이 된 것도 있었다.
남편은 밤 속에서 어떻게 하면 밤벌레를 나오게 할 수 있는지 물었다. 하지만 방법은 하나뿐이다. 밤벌레들은 밤 속에 들어가 살다가 더 이상 먹을 게 없다 싶으면 밤 속에서 기어 나와 다른 밤으로 옮겨간다. 그래서 밤벌레를 죽이기 위해선 밤을 삶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벌레가 들거나 상하기 시작한 것들은 밤처럼 어둡고 밀폐된 곳, 늘 우리가 못 보는 곳에서 진행된다. 그리고 그것들은 항상 겉보기엔 제일 크고 달게 생긴 것들이다. 겨울이 되면 귤을 상자째 사다 놓고 추운 베란다에 놔두고 꺼내먹는다. 그중에 먼저 썩기 시작하는 귤은 제일 달고 농익은 귤이다. 하지만 그런 귤은 옆에 있는 귤마저 금방 상하게 만든다. 그래서 상자에 상하기 시작한 귤을 발견하면 얼른 꺼내야 한다.
상한 귤이 상자에 있는지 아닌지 가려내는 것처럼, 혹은 실하게 반짝거리는 밤 속에 벌레든 밤인지 아닌지 알아보려는 것처럼, 국민의 피 같은 세금이 혹시 어두운 곳에서 썩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는 것이 국정감사다. 하지만 요즘 벌어지는 국정감사를 보면, 진짜 살찐 밤벌레들은 뜨거운 물에 삶아지기 전에는 절대 달콤하고 실한 밤 속에서 나올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상한 것은 역시 상한 것들끼리 뭉쳐 있다는 씁쓸한 진실을 발견하게 된다.
유형진(시인), 그래픽=공희정 기자
[살며 사랑하며-유형진] 밤벌레와 유유상종
입력 2016-10-09 17: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