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고 아파트에 덩그러니 혼자 살던 신달자(73·사진) 시인은 2년여 전 서울 종로구 계동의 한옥으로 우연히 이사를 왔다. 정확한 주소는 서울 종로구 북촌로 8길.
열 평 작은 집이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발 닿고 머리 닿는/봉숭아 씨만 한 방’이지만 마당과 툇마루 등 있을 건 다 있다. 지하에는 방을 만들어 시를 쓰는 작업실로 쓴다. 그가 북촌 한옥에 사는 기쁨을 노래한 시들을 묶어 시집을 냈다. 제목도 ‘북촌’(민음사)이다.
“이사온 첫날 최소한의 물건을 들여다 놓고 한지등을 켜면서 뒤척이다 아슴하게 ‘북촌’이라는 시집을 내겠다”고 작정했던 게 이뤄진 것이다. ‘살 흐르다’ 이후 2년 만의 신작 시집이다.
시인은 7일 국민일보와 통화하면서 “어릴 때 한옥에 살았다. 세월이 흘러 다시 한옥으로 돌아오니 마치 외가에 온 듯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어찌나 좋은지 북촌이라는 말이 절로 입에 고이더라”고 말했다. 이어 “조선시대 정치, 사회, 문화의 중심지였던 북촌을 증언하고 싶었다”고 했다.
‘공일당(空日堂)’이라는 당호도 어엿하게 붙은 이 한옥 예찬을 들어보자. ‘여명의 빛/ 창 덮은 한지 사이로 흘러’들고, ‘한옥 처마 밑에 꽃피는 빗소리’가 있고, ‘강아지 혓바닥만한 툇마루’에 앉아 ‘어린 하늘을 보는’ 기쁨이 있다.
뿐인가. “열 평만 내 것인 줄 알았는데, 북촌이 다 내 것”이라고 큰 소리 친다. 주변의 삼청공원, 국립현대미술관, 북촌 상가 등으로 내닫는 그녀의 발걸음은 마실가듯 경쾌하다.
감성과 정서도 한옥 속에서 새롭게 축조된다. “붉은 고추 널어놓은/ 옆집 한옥 마당에/ 나도 누워 뒹굴면/ 온 몸 배어나는 설움 마를까”(‘나도 마른다’), “이 집 처마와/ 저 집 처마가/ 닭 벼슬 부딪치듯/ 사랑 싸움을 하네”(‘북촌 가을’), “반은 닳은 외할머니 은가락지만한 한 한옥 앞에/ 쪼그리고 앉은/ 나”(‘구겨지다’) 같은 시구가 반짝거린다.
시인은 “노후의 나직한 귀향 같은” 한옥이라는데, 그녀의 시집을 넘기다 보면 한옥살이의 기쁨이 오감을 자극하며 퍼져 지금이라도 아파트를 버리고 한옥에서 살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댄다.
‘탁, 하고 마당에 신문 떨어지는 소리 들리는’ 집에 대한 로망을 자극하는 시집이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북촌으로 이사온 지 2년여… 외가 온 듯 어찌나 좋은지”
입력 2016-10-09 1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