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봅시다] 교육부 “학칙 변경” vs 교수들 “수업 우선”

입력 2016-10-08 04:00

서울의 사립대에 다니는 김모(25·여)씨는 지난 1학기 때 중소기업에 합격했다. 졸업을 위해서는 전공 6학점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김씨는 2학기 수강신청을 한 뒤 교수들에게 ‘취업계’를 내고 직장에 다니는 중이다. 지난달 28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재학 중인 조기 취업자가 교수에게 출석 인정이나 학점 이수를 부탁하는 행위를 ‘부정청탁’으로 간주해 김영란법 위반이라고 볼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교수들은 김씨에게 “출석을 인정해줄 수 없으니 학교에 나오라”고 했다. 김씨는 직장을 그만둘 수도, 학교를 그만둘 수도 없는 난감한 처지에서 직장에 출근하고 있다.

김씨만 이런 고민을 하는 게 아니다. 국민의당 송기석 의원이 4년제 대학 62곳과 전문대 65곳 등 127개 학교로부터 자료를 받았더니 올해에만 4018명이 학교를 다니면서 취업했거나 취업 예정이었다. 현재 진행 중인 기업 공채가 진행될수록 인원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담당 부처인 교육부는 지난달 26일 각 대학에 ‘학칙을 개정해 조기 취업한 학생에게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지난 5일에는 다시 공문을 보내 ‘대학들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라’고 재촉했다. 대학 학칙에 ‘조기 졸업자의 출석 등은 교수 재량에 맡긴다’는 식의 조항을 넣으면 부정청탁 논란을 피할 수 있다는 취지다.

일부 대학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숙명여대는 지난달 28일 학칙 개정을 공고했다. 성균관대, 명지대는 이달 중 학칙을 바꿀 예정이다. 중앙대는 이번 학기 중에, 한양대는 다음 학기 학칙에 조기 취업자 관련 규정을 신설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서울대, 고려대를 비롯한 여타 대학들은 아직 방침을 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학문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대학이 기업 채용 일정에 따라 학칙을 개정하는 것 자체가 비정상’이라는 목소리다. 서울대 한 교수는 “기업이 학생들을 선발하며 대학의 학사일정을 배려하지 않는데 학교와 교수가 알아서 기업을 배려하라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기업이 대학 졸업자만 뽑거나 재학생을 뽑았다면 졸업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 맞는 일 아니냐”고 말했다. 한 사립대 교수도 “취업난을 알기 때문에 학생들이 부탁하면 거절하기 어렵다”면서도 “교육부가 학교에 대책을 마련하라고 재촉할 게 아니라 기업에 공문을 보내 신입사원 선발 일정을 조정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교육부는 현실적으로 대학 학칙 변경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수들의 문제 제기는 타당하다”며 “하지만 신입 공채 기간이 11월쯤으로 정해진 대기업이나 공채가 빠른 중견기업들에 교육부의 협조 요청이 통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글=홍석호 기자 will@kmib.co.kr, 삽화=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