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집 잔치에 감 놔라 배 놔라 한다’를 ‘현대속담’으로 바꾸면 친절한 금자씨의 “너나 잘하세요”

입력 2016-10-08 00:04
‘안물안궁(안 물어봤어 안 궁금해)’처럼 요즘 시대에 일상어처럼 쓰이는 말들을 ‘현대 속담’이라고 하면 안 될까? ‘콩글리시’는 몰아내야만 하는 것일까?

한글날을 맞아 한국어를 지키고 사랑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이런 주장들은 흔히 인터넷 용어나 콩글리시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러나 언어란 고정된 게 아니며 시대와 함께 변화하고 다른 언어와 섞이게 마련이므로 이들을 한국어의 품 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프리랜서 출판편집자 김승용(48)씨는 지난 10년간 우리말 속담 3091개를 수집해 최근 ‘우리말 절대지식’을 출간했다. 이 책은 현대 속담을 수록한 최초의 속담사전이다. 김씨는 인터넷 게시판이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트위터, 페이스북 등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문구 300여개를 찾아내 이들을 현대 속담으로 정의하고, 유사한 의미의 옛 속담 아래 배치했다.

‘토끼를 다 잡으면 사냥개를 삶는다’라는 속담을 책에서 찾아보면 아래 항목에 ‘씹다 버린 (풍선)껌’이 현대 속담으로 제시돼 있다. ‘남의 집 잔치에 감 놔라 배 놔라 한다’에는 어떤 현대 속담이 어울릴까? 박찬욱 감독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 ‘너나 잘하세요’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헤어진 애인 검색하기’란다.

이런 식으로 ‘안물안궁’은 옛 속담 ‘청치 않은 잔치 묻지 않은 대답’과, ‘샌드위치 신세’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와 같이 분류된다. 이밖에도 ‘형만 한 아우 없다’-‘1편만 한 속편 없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세탁소 아저씨도 두 줄 잡을 때 있다’, ‘제 똥 구린 줄 모른다’-‘니가 하면 비리 내가 하면 의리’ 등 옛 속담-현대 속담의 호응 관계가 흥미롭다.

저자 김씨는 7일 “속담은 한국인의 생각과 감정을 가장 적절한 비유로 표현해낸 한국어 레토릭의 절정”이라며 “속담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지금 시대에도 끊임없이 생성되고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15개 언어를 해독하는 언어전문가이자 번역가인 신견식(43)씨는 최근 출판한 ‘콩글리시 찬가’에서 콩글리시 옹호론을 펼쳤다.

그는 어떤 외래어를 콩글리시라고 규정할 때 적용하는 ‘영어라는 규범’을 문제 삼는다. 우리말에 들어온 외래어의 뿌리가 영어나 일본어만은 아니라는 게 그의 핵심 주장이다.

예를 들어 ‘알레르기’나 ‘백 프로’는 독일어에 뿌리가 있다. ‘핸드볼’은 북유럽, ‘초콜릿 복근’은 프랑스, ‘모르모트’는 네덜란드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들은 영어를 기준으로 하면 틀린 말이 되겠지만,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에서 유래했다는 점을 이해하면 틀리지 않은 말이 된다.

콩글리시의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는 ‘러브샷’이란 말도 영어 표현에는 없지만, 독일어에서는 러브샷과 똑같은 행위를 나타내는 표현을 찾아볼 수 있다. 또 ‘더치페이’라는 말은 세계 어느 언어에서도 사용하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 초부터 사용됐다.

저자 신씨는 “더치페이처럼 한국에서 생성된 순수한 콩글리시에는 일본의 매개를 지나 광복 후 미국을 규범으로 삼아 전개된 한국의 서구화 과정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기 때문에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도 있다”면서 “외래어들을 영어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교정하는 데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