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호사다. 이런 호사가 없다. 중국의 1급 문화재에서부터 한국의 국보, 보물을 망라한다. 명작을 ‘도시와 미술’이라는 키워드로 묶어낸 솜씨도 놀랍다. 미술은 도시의 성장 속에 발전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조선의 정치·행정·군사 도시로 출발했던 서울이 상업 도시로 발전하던 18세기부터 1930년대까지의 궤적을 미술로 풀어낸 것이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의 ‘미술 속 도시, 도시 속 미술’전 얘기다.
중국인들도 한나절을 줄 서서 본다는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와 ‘고소번화도(姑蘇繁華圖)’를 볼 수 있는 귀한 기회다. 랴오닝성박물관에서 빌려 온 두 작품은 딱 보름 동안인 23일까지만 진본을 공개하니 서둘러야 한다.
‘원조’ 청명상하도는 북송의 화가 장택단이 변경(허난성의 카이펑)의 번화한 도시 생활 모습을 어린이그림책 ‘월리를 찾아라’처럼 꼼꼼하게 그린 두루마리 그림이다. 얼마나 사랑을 받았던지 원∼청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패러디됐다. 이번에 온 건 명나라 때 구영이 그린 것인데, 무대는 강남의 상업도시 소주로 바뀌었다.
길이 10m에 이르는 두루마리에는 번듯한 기와집과 탁 트인 거리, 그리고 그 사이를 활보하고, 장사를 하고, 고기를 잡는 등 도시를 사는 사람들의 온갖 모습이 개미처럼 작지만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청나라 때는 건륭황제의 명으로 궁정화가에 의해 ‘고소번화도’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그려졌다.
청명상하도는 조선에도 전해져 상업화되어 가는 도시 한양을 사는 식자층을 흥분시켰다. 상업화가 진전되고, 신분제가 허물어져 중인도 부자가 될 수 있었던 18세기, 돈이 도는 한양의 모습을 다양한 인물군상을 통해 표현한 ‘태평성시도’는 조선판 청명상하도인 셈이다.
도시에는 여흥이 필수다. 씨름과 좌판, 바둑과 투호 등 도시인의 쾌활한 일상, 선비와 기생의 놀음, 주점 등 도시의 향락을 담은 김홍도의 ‘단원풍속도첩’(보물 제527호), 신윤복의 ‘혜원전신첩’(국보 제135호), 작자 미상의 ‘대쾌도’ 등은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
미술 애호는 부유층의 문화다. 도시인의 미술 향유를 보여주는 압권은 석농 김광국의 컬렉션을 모은 화첩 ‘석농화원’이다. 영조의 어의를 지냈던 그의 컬렉션은 네덜란드 동판화, 중국에서 온 낙타그림, 일본의 우키요에 등 실로 국제적이다.
부의 과시를 보여주는 또 다른 장르가 ‘책가도’이기도 하다. 왕과 양반들, 나아가 중인·서리의 집까지 장식했던 ‘책가도’에는 책 뿐 아니라 중국산 도자기, 시계 등 진귀한 물건이 함께 그려져 있다. 지난 여름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전시에서 히트를 쳤던 책가도 명품 일부가 도시 문화의 맥락 속에 또 나왔다.
관람에 지칠 때 쯤 아연 난만한 매화 방이 나타나 활력을 준다. 조희룡, 유숙, 장승업이 8폭 병풍에 그린 대작 매화도가 4개 벽면을 채운 것이 압권이다. 중인 출신인 이들은 지조의 상징으로만 그려졌던 매화를 벗어던졌다. 대신, 휘어질 듯한 고목 위 흐드러지게 핀 홍백 매화가 감각적이다. 도시는 그렇게 화가의 감수성마저 바꾸었다.
총 373점이 전시되는데, 구석구석 놓쳐서는 안 될 명품들이 많아 충분히 시간을 갖고 관람 오기를 권한다. 11월 23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한국 국보부터 중국의 1급 문화재까지… 돈이 돌아가니 미술도 발전한다
입력 2016-10-09 17:41 수정 2016-10-09 17: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