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축하난’ 시든 대신 ‘1T1F’시대 꽃 피운다… 김영란법 직격탄 화훼업계의 도전

입력 2016-10-08 00:05
지난 5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꽃 생활화 페스티벌’을 찾은 아이들이 ‘김영란법 꽃 지켜줘’ 등의 문구를 들고 인증사진을 찍는 이벤트에 참여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베티카 제공
꽃을 이야기하고 주고받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있다. 맨 위부터 지난달 서울 상암동에서 열린 ‘1테이블1플라워(1T1F)’ 거리 캠페인에 참여 중인 시민들, 지난 5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꽃생활 페스티벌에서 이벤트 선물로 백합꽃을 받으며 웃고 있는 시민, 꽃생활 페스티벌에서 꽃과 오르골을 결합한 플라워오르골을 소개하고 있는 직원. 조민영 기자
연휴 후 정신없이 지나간 월요일 다음인 화요일 아침엔 ‘진짜 월요병’이 도지는 듯했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일상을 곱씹으며 사무실로 들어서는데 생각지 못한 향기가 풍겼다. 덕분에 늘 똑같던 사무실을 새삼 돌아봤다. 꽃이다. 쨍한 햇빛처럼 선명하게 주황빛을 띤 꽃이 중앙 책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각자 자리 책상에도 조그마한 꽃병이 놓였다. 막 출근해 꽃을 발견한 이들끼리 이야기가 꽃을 피웠다. 별거 아니지만 ‘어제와 다른 오늘’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됐다.

기업사보·디자인 컨설팅사 ‘12월 미디어’의 지난달 추석연휴 뒤 아침 풍경이다. 이 회사는 그날을 시작으로 매주 화요일 사무실 풍경을 바꾸고 있다. 매주 ‘꽃 코디’가 지난 꽃을 가져가고 새 꽃을 들여주는 ‘1테이블 1플라워(1T1F)’ 서비스를 받기 시작했다. 이 회사 최명훈(33) 대표는 지인의 추천으로 이 서비스를 알게 됐다. 그는 “작은 회사 안에서 직원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던 중에 이 서비스를 소개받고는 너무 반가웠다”면서 “특별한 일이 없으면 못 사는 것 같던 꽃을 쉽게 접하게 되니 나부터 좋았다. 자연스레 꽃이 놓인 장소 주변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도 신기하더라”고 말했다.

일에 꽃을 더하다

‘1T1F’는 ‘사무실 책상(table) 하나당 꽃(flower) 하나씩을 놓자’는 의미로 정부가 원예산업을 살리자며 추진 중인 꽃 생활화 정책을 현실에 맞게 진화시킨 일종의 공익사업이다.

정기적으로 꽃 배달을 받고 싶은 기업이 각 회사 사정에 맞는 플로리스트·화훼업체(꽃 코디)를 직접 고르고 기업이 원하는 양(금액)을 지정하면 꽃 코디가 매주 지정된 날, 그 사무실에 맞는 꽃을 가지고 방문해 디자인해주고 기존의 꽃 수거까지 마무리해준다. 꽃을 신문이나 생수처럼 정기적으로 받아보는 꽃 배달 서비스에다 분위기에 맞춰 꽃으로 사무실을 단장해주는 플로리스트 서비스까지 받는 셈이다. 기업이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 등으로 다른 기관에 꽃을 지원하고 싶으면 대행도 된다.

본격적으로 홈페이지(www.1T1F.kr)를 만들어 기업 신청을 받기 시작한 지 한 달 남짓 동안 16개 기업에서 꽃 배달을 받았다. 20개 가까운 기업은 꽃 코디와 상담을 통해 조만간 꽃을 받아보게 된다. 최 대표는 “회사도 직원도 큰 부담 없이 업무 환경을 신선하게 바꾸는 효과가 있더라”고 전했다.

“처음엔 플로리스트가 꽃을 바꾸러 사무실을 찾아오는 걸 낯설어하는 분위기도 있었는데 지금은 다들 좋아해요. 꽃이라는 말부터 긍정적이잖아요.”

사무실만 꽃을 정기구독(?)하는 게 아니다. 생활 속에 꽃을 가까이 하자는 다양한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1만∼2만원대 작은 꽃다발을 화병과 함께 매주 혹은 격주 집이나 사무실로 배달해주는 꽃 배달 업체도 인기를 끌고 있다. 드라이플라워를 활용해 예쁜 음악이 흐르는 오르골을 꾸민 플라워오르골, 3D프린팅을 활용해 사무실 위에 놓을 수 있는 작은 크기의 미니 정원(테라리움)을 꾸며주는 청년벤처 등 꽃 가공품의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다.

“걱정 대신 ‘늘꽃’ 해주세요”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는 지난 5일부터 ‘꽃 생활화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 음악 공연과 전시물 등을 선정하는데 까다롭기로 유명한 예술의전당에서 꽃 관련 전시가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9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페스티벌은 탁 트인 예술의전당 야외 공간에서 주로 이뤄져 오가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꽃을 접하고 각종 이벤트에도 참여할 수 있게 했다. 예술의전당 근처 사무실에서 일하는 김수현(가명·26·여)씨는 지난 5일 “점심시간이라 산책 겸 예술의전당에 왔는데 꽃들이 장식되어 있으니 가을 햇살과 어우러져 참 좋다”면서 “꽃 캠페인 참여 인증하고 백합 한 송이를 받았는데 그 향만으로도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부정청탁금지법, 이른바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꽃·화환 등 소비가 급감해 위축되고 있는 화훼업계도 어두운 표정을 고쳐 꽃처럼 다시 피어나고 있다. ‘불금엔 불꽃하세요’ ‘김영란법 꽃 지켜줘’ ‘수고했어-나를 위한 꽃’ 같은 긍정적인 구호를 내걸었다.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에서 만나는 천편일률적인 화환이 아니라 자연의 아름다움을 생활공간으로 가져다주는 꽃의 의미를 되살리려는 움직임이다. 김영란법 때문에 화훼업계를 걱정하는 분위기를 오히려 꽃을 가깝게 느끼게 하는 새로운 운동의 계기로 삼자는 역발상이다.

한국인의 1인당 연간 꽃 소비액은 평균 1만4000원이다. 네덜란드나 스위스, 노르웨이 등 화훼 선진국의 1인당 평균 소비액 15만원과 비교하면 10분의 1도 채 안 된다. 김영란법이 아니어도 한국은 꽃이나 화분 등에 대한 관심이 매우 낮은 편이다.

1T1F 캠페인을 진행하는 공익 업체 베티카(VETICA)의 김선영 플래너는 “캠페인을 하다보니 일반 시민들도 김영란법으로 화훼업계가 위축될 수 있다고 정말 많이 걱정해주시더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대신 ‘늘꽃’(늘 꽃과 함께) 해주시면 되는 거예요. 거창하고 큰 꽃다발 화분이 아니라 작은 꽃이라도 곁에 두고 자주 함께하면 화훼업계도 살고 각자의 생활도 더 예뻐지는 것 아니겠어요?”

정부도 공공청사 중심으로 꽃 직거래 장터를 확대해 나가는 한편 정부가 인증하는 착한 꽃집을 늘려 꽃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넓히겠다는 계획이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