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부패 뿌리뽑지 못하겠지만 곤란한 청탁 거절할 법적근거 마련”

입력 2016-10-06 21:19 수정 2016-10-07 01:07

김영란(사진) 전 대법관이 6일 ‘김영란법’에 대해 “이 법이 거대한 부정부패를 뿌리뽑지는 못할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공무원들이) 눈치 보지 않고 거절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을 최초로 제안했던 김영란 전 대법관이 법 시행 이후 처음으로 대중 앞에 섰다. 6일 오후 7시30분 서울 마포구 동교동 가톨릭회관에서 출판사 창비 주최로 열린 ‘김영란 저자 초청 대담’에는 관객 80여명이 자리를 채웠다. 김 전 대법관의 저서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와 ‘책 읽기의 쓸모’를 놓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누기에 앞서 ‘김영란법’을 주제로 약 20분간 대담이 이어졌다.

김 전 대법관은 “매일 포털사이트 1면에 이름이 나오는 게 부담스럽긴 하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법의 원작자’면서 지나치게 침묵한다는 세간의 평가에 대해 “제가 운동하듯 나서서 구호를 외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전 대법관은 “김영란법은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기다리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사회에는 소수의 악당들이 저지르는 거대한 부정부패도 있지만, 다수의 선한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부정에 젖어드는 것도 막아야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김 전 대법관은 ‘거절할 수 있는 근거’로서의 법을 만들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사회는 지연, 학연 등을 앞세워서 거절을 어렵게 만드는 농경사회적 측면이 많이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처벌수위나 체포가능성만 높인다고 부정이 통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규범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규범을 내면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 전 대법관은 김영란법의 예기치 않은 부작용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취업 예정자들의 학점 인정도 ‘김영란법’ 위반 대상이 되는 등 선의의 피해자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대학생의 지적에 “여러 부작용이 언론에 매일 보도되는데, 예기치 않은 부작용은 보완해나갈 수밖에 없다”며 “입법 취지를 생각하면서 부작용이나 정돈되지 않은 부분들을 채워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대법관은 최근 판검사들의 비리에 대해 “요즘 사건들은 제가 봐도 놀라울 정도”라며 “사법부 조직이 굉장히 닫혀 있는 세계 안에서 바깥세상을 모르고 ‘우리가 열심히 하면 알아주겠지’라 생각하며 내부논리에만 충실히 살아온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전 대법관은 자신도 김영란법 적용 대상이라며 “오늘도 이 대담 모임을 사전 신고하고 왔다. 얼마 전에 학교로 큰 소포가 왔는데 다시 포장을 하고, 우체국을 찾아가 택배를 부치는데 귀찮기는 하더라”며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김 전 대법관은 대담 말미에 “(김영란법은) 사회적 논의가 계속해서 필요할 것”이라며 “매일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법이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