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건 폐질환 아이 둘과 4000만원 빚더미… 그녀에게 절망은 질병이 아니라 무관심이었다

입력 2016-10-07 04:08
지난달 24일 숨을 거둔 김연숙씨가 지난 7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가습기 살균제 3, 4등급 피해자’에 대한 정부 지원을 촉구하고 있다. 김씨는 4등급 피해자였다. 뉴시스

김연숙(41·여)씨가 지난달 24일 오후 11시38분 숨을 멈췄다. 30% 정도만 기능했던 폐는 결국 멈췄다. 그는 가습기 살균제 ‘4등급 피해자’였다. 김씨는 가습기 살균제 3등급 피해자인 8살 큰아이와 4등급 피해자인 5살 작은아이를 두고 세상을 떠났다. 치료를 하느라 진 빚 4000만원도 남았다. 3, 4등급은 사람마다 증상이 다르다. 김씨 큰아이는 폐에 결절이 생기고 숨 쉬는 능력이 약해 운동을 못한다. 그나마 작은아이는 아직까지 기침을 가끔 하는 정도다.

비극은 2010년 11월 시작됐다. 급성후두염에 걸린 큰아이를 데리고 간 동네 의원에서 가습기를 쓰면 도움이 된다고 했다. 당시 임신 상태였던 김씨는 가습기 속 세균을 없애준다는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을 썼다. 가습기 살균제를 쓴 산모와 태아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이듬해 4월까지 아무 의심 없이 살균제를 사용했다.

2011년 9월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기침이 그치지 않았다. 동네 병원은 감기라고 했지만 낫지 않았다. 2012년 3월 아주대병원을 찾아 단층촬영(CT)과 엑스선 촬영을 했다. 의사는 “이런 폐 모습은 생전 처음 본다”며 폐 전문의가 있는 서울아산병원을 찾아가보라고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원인을 찾지 못했다.

증상은 점점 나빠졌다. 기침은 계속됐고, 숨이 차 걷기 힘든 날이 많아졌다. 2014년에야 김씨는 가습기 살균제를 의심했다. 정부의 피해조사를 거쳐 지난해 김씨는 4등급 피해자 판정을 받았다. 4등급은 ‘폐 섬유화’ 증상만 가습기 살균제의 피해 판정 기준으로 삼는 현재 정부 기준으로는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일 가능성이 거의 없음’을 의미한다. 김씨는 폐섬유화 증상이 나타나긴 했지만 폐가 파괴되는 방식이 정부 기준과 달랐다. “멀쩡했던 사람이 가습기 살균제를 쓰고 나서 숨을 제대로 못 쉬는데 왜 관계가 없느냐”고 따졌지만 “판정 결과는 전문가들이 모여 결론낸 것”이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김씨는 지난해 여름 휴직을 했다. 주머니 사정은 빠듯했지만 입원이 잦아 어쩔 수 없었다. 한 번 입원에 400만원 정도 들다보니 빚은 늘어만 갔다.

지난 7월 김씨는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깡마른 몸으로 “현재 폐 기능이 30%가량 남아 폐 이식을 해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이런데도 저는 4등급 판정을 받았습니다”며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4등급 피해자에 대한 지원을 호소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생전에 김씨는 남편에게 “더 나빠지지 않고 아이들과 지금 이대로만 살았으면 좋겠어”라고 자주 말했다. 지난 7월 폐 이식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최소 1억5000만원이 들지만 살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그러나 폐렴, 폐결핵이 합병되면서 더는 ‘세상의 끈’을 잡지 못했다. 김씨 장례식장에는 정부와 옥시 관계자 누구도 찾아오지 않았다. 전화도 없었다.








윤성민 기자 wood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