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 분할 명분 얻은 삼성… 지배구조 개편 속도낼까

입력 2016-10-07 00:57 수정 2016-10-07 04:00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삼성전자 인적분할 요구로 삼성그룹 지배구조 재편이 본격적으로 진행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엘리엇의 요구가 그동안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그룹 승계를 위한 유력한 방안으로 언급됐던 내용인 만큼 이 부회장의 등기이사 선임과 맞물려 지배구조 재편 작업이 본격화될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6일 엘리엇의 요구에 대해 “삼성전자 주주의 요구이므로 신중하게 검토하겠다”며 더 이상의 언급을 피했다. 엘리엇은 앞서 5일 오후 삼성전자를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해야 한다는 요구사항이 담긴 ‘삼성전자 주주가치 증대 제안서’라는 서신을 삼성전자 측에 전달했다. 분할한 지주회사는 현재 삼성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는 삼성물산과 합병해야 한다는 요구도 담았다. 30조원의 특수배당, 삼성전자 사업회사의 한국거래소·나스닥 공동상장 등도 들어 있다.

얼핏 외국자본의 경영간섭으로 비칠 수 있다. 엘리엇은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두고 삼성 측과 첨예하게 대립했었다. 그러나 엘리엇의 이번 요구는 이 부회장 등 삼성그룹에 힘을 실어주는 호재란 관측이 나온다. 엘리엇의 요구사항들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재편을 위한 명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이 부회장은 자신이 17.23% 지분을 보유한 삼성물산을 통해 삼성전자에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4.2%, 삼성생명 지분 19.3%를 갖고 있다. 또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이 7.6%다. 이 부회장이 직접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은 0.59%에 불과하다. 자사주를 제외한 삼성 측 지분을 모두 합해도 18.15%다. 외국계 자본이 50%를 넘는 상황을 감안하면 이 부회장으로서는 경영권 안정을 위해 지분율을 더 높여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이 238조원에 달하는 점을 감안할 때 어림잡아도 지분율을 1% 올리는 데 2조3000억원이 든다. 때문에 삼성전자의 인적분할은 이 부회장의 경영권 강화를 위한 유일한 방안으로 언급돼 왔다.

현재 삼성전자가 보유하고 있는 자사주는 12.8%다. 삼성전자가 분할하게 되면 지주회사는 이 자사주를 활용해 사업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보유하게 된다. 이후 지주회사의 공개매수를 통한 현물출자에 이 부회장이 참여하고, 삼성전자 지주회사와 삼성물산이 합병하게 되면 이 부회장은 지주회사에 대한 지분율을 월등히 높일 수 있다. 한국투자증권 윤태호 연구원은 “엘리엇이 화두를 던졌지만 삼성전자 저평가 해소, 지배구조 투명성, 오너 일가 지배력 확대라는 명분은 충분하다”며 “엘리엇의 요구가 갈등요인이 되기보다는 지배구조 개편의 실마리가 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분석했다.

시기적인 문제도 있다. 지난 7월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 등은 회사 분할 시 분할 회사가 보유한 자사주 활용을 규제하는 상법 개정안을 발의해둔 상태다. 이 법이 통과되면 이 부회장으로서는 삼성전자 지주회사의 자사주를 재편 작업에 활용할 수 없게 되는 셈이다. 때문에 증권가에서는 상법 개정안이 입법화되기 전에 삼성그룹이 본격적인 지배구조 개편 절차에 착수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오는 27일로 예정된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등기이사 선임이 지배구조 재편을 염두에 둔 사전 포석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글=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