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성삼의 일과 안식] 진지한 여가

입력 2016-10-07 20:21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30년 넘게 자동차공장에서 일하는 정오현씨는 10여 년 전 목디스크로 인생의 고비를 넘기면서 삶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그때부터 하고 싶은 일을 찾다가 대학에 진학해 시집을 내고, 지난해는 중고요트를 구입해 선장이 됐다. 은퇴를 1년 앞둔 그는 설레는 마음으로 전국의 섬 100개를 일주하는 계획을 세우고 주말이면 바다로 나간다.

6년 전에 돌아가신 옥한흠 목사는 10년 전에 세 번째 사진전 ‘보임, 그 이상(理想)과 이상(以上)’이 열었고, 이듬해 ‘자연 & 동심의 행복’이란 사진수상집을 출간했다. 지천명을 넘기면서 건강문제로 시작한 목사님의 사진활동은 삶과 신앙에 대한 통찰을 자연과 하나님 나라라는 렌즈로 담고 싶었던 성직자의 정체성을 깊이 느끼게 했다.

그 무렵 옥 목사님은 모 언론사 기자에게 인터뷰 후 사진수상집을 선물했는데, 이유를 몰랐던 기자가 목사님 소천 후 그 목사님이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는 한국교회의 이슈보다는 사진을 매개로한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움과 쉼이었음을 뒤늦게 알았다고 한다.

여가학 연구에서 근래 들어 주목받는 이론 중 하나가 ‘진지한 여가’(serious leisure)이다. 세계적 여가학자인 캐나다 캘거리대 로버트 스테빈스 교수가 1970년대 중반에 제시한 ‘진지한 여가’는 달리 말하면 ‘전문화된 여가’라 할 수 있다.

그는 여가를 ‘일상적 여가’와 ‘프로젝트형 여가’, ‘진지한 여가’ 세 가지로 구분한다. 일상적 여가는 TV보기, 산책, 낮잠 등 특별한 준비나 지식이 없어도 바로 즐거움을 보상받는 것이다. 프로젝트형 여가는 결혼식, 생일파티, 절기축제 등 일회적 혹은 일시적인 노력을 필요로 한다.

반면 ‘진지한 여가’는 개인이 즐겨하는 비직업적 여가이지만 특수한 기술·지식·경험을 필요로 하고, 경력이 쌓여갈수록 성취감·즐거움·전문성 또한 증가하는 체계적인 활동이다. 구체적인 사례로 스쿠버 다이버, 천문학, 기타연주, 건축 여행, 상담 및 수집 활동, 인문학 공부 등을 들 수 있다. 여러 연구논문을 통해 사람들은 일에서보다 진지한 여가에서 더 강한 자기 정체성과 삶의 만족을 느낀다고 한다. 따라서 진지한 여가는 오늘날 서구사회의 중요한 문화현상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정씨의 요트와 옥 목사님의 사진 활동은 그저 좋은 취미활동이 아니라 삶을 새롭게 세우는 ‘진지한 여가’라 할 수 있다. 진지한 여가는 앞으로 한국사회가 추구하는 중요한 문화가 될 것이다. 우리가 쉼과 여가를 배우고 회복해야 하는 이유가 단지 좋은 시간을 가진다는 수준이 아님을 진지한 여가를 통해 알 수 있다.

소명의식과 은사가 일을 통한 비전만으로 경도되는 한국교회 현실에서 진지한 여가는 코이노니아와 안식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전망하고 현재화하는 좋은 솔루션이 될 것이다. 야생화 전문사진가, 의자 디자이너, 생활 법률가, 소믈리에, 웹툰 평론가, 인형극 연출가가 되고 요트로 세계일주하는 은퇴 목회자의 삶을 한 번 상상해 보자. 이런 것이야말로 노년의 설레는 삶이고 사회봉사이자 전도의 놀이터가 아닌가. 옥성삼<크로스미디어랩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