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들 돕던 청년, 지구촌 해결사로 나서다

입력 2016-10-07 00:03
차기 유엔 사무총장으로 6일(현지시간) 낙점된 안토니우 구테헤스 전 유엔 난민기구(UNHCR) 최고대표가 2011년 6월 소말리아의 난민 캠프를 찾아 현지인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AP뉴시스
2013년 UNHCR 친선대사인 미국 여배우 앤젤리나 졸리와 함께 요르단에 있는 시리아 난민 캠프를 찾았을 때의 모습. AP뉴시스
포르투갈 천재들이 들어가는 리스본대학 고등기술연구원의 20대 학생 안토니우 구테헤스는 틈날 때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다녔다. 그는 빈곤가정 아이들을 위한 여름학교 교사를 했고, 홍수 피해를 입은 이들을 도왔다. 하지만 그는 자원봉사만으로 가난과 고통을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졸업 뒤 3년간 하던 조교수 자리를 때려치우고 좌파 정당인 사회당에 입당했다. 사회당에서 그는 당대표를 거쳐 총리를 역임하면서 최저생계비 도입, 공공교육과 공중보건 투자 확대 정책을 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치조차 빈곤을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뛰어든 곳이 유엔이다. 유엔에서 일한 지 10년 만에 유엔 사무총장 자리에 오르게 됐다. 전 세계적으로 어느 때보다 난제가 많은 지금, 그는 ‘글로벌 해결사’가 될 수 있을까.

AP통신에 따르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난민 전문가’ 구테헤스(67) 전 유엔난민기구(UNHCR) 최고대표를 반기문 총장을 이을 제9대 유엔 사무총장 후보로 총회에 추천키로 했다. 사무총장을 안보리가 추천하면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동의하는 게 관례다.

서유럽 출신이고 남성인 그가 총장 자리에 오르게 된 건 예상 밖이다. 유럽,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출신 총장이 나왔기에 러시아와 동유럽 국가들은 이번에는 동유럽 출신이어야 한다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50개 회원국은 첫 여성 총장을 요구했다. 막판 경쟁에서도 남녀 후보 각 5명이 각축을 벌였다.

하지만 안보리는 구테헤스의 경륜에 손을 들어줬다. 1995∼2002년 포르투갈 총리를 지냈고 지난해 말까지 10년간 UNHCR 최고대표를 역임했기에 현재의 지구촌 난국을 헤쳐 나갈 적임자라고 판단한 것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돌아가며 맡는 안보리 의장직을 러시아가 맡을 때”라며 “러시아가 정치력 과시 차원에서 결단을 내렸다”고 분석했다. 전날 제6차 비공개 투표에서 사실상 구테헤스를 낙점할 때 결과는 15개 안보리 이사국 중 13개 나라가 찬성, 2개 나라가 의견 없음이었고 반대는 한 표도 없었다.

구테헤스는 1992년부터 10년간 포르투갈 사회당 대표를 지낼 때 유럽연합(EU)의 통합 정책을 강력 지지했다. 또 친기업적인 행보를 보이면서도 빈곤층을 위한 공공투자 확대 정책을 폈다. 강성좌파인 사회당을 시대에 맞게 중도좌파로 변신시키기도 했다. 다만 총리 때는 비판을 받을 만한 민감한 정책은 모두 피해 ‘소극적 총리’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UNHCR 최고대표일 때 미국 여배우 앤젤리나 졸리를 난민기구 친선대사로 임명함으로써 난민 문제를 글로벌 이슈로 부각시켰다. 내년 1월부터 시작될 그의 임기도 무엇보다 시리아와 아프리카 난민 문제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에 난민 수용 확대를 촉구하고, 시리아 내전 종식에도 발 벗고 나설 것이란 관측이 많다.

아울러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여성차별 개선, 빈부격차 해소 등 반 총장이 추진한 이슈도 계승·발전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문제 해결에 민간 기업의 개입을 확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글=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