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이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에 이어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특혜 의혹에도 ‘상설특검제’(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특검법)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당초 이 제도의 취지는 특별검사 발동 요건과 수사 대상 등을 미리 법률로 정해 특검 도입 때마다 불거졌던 정치적 논란을 최소화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야당은 사안마다 특검을 꺼내들 태세고, 여당은 소관 상임위에서 이를 저지할 궁리를 하고 있어 소모전만 되풀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 규명을 위한 특검을 처음 주장한 건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이다. 검찰이 두 재단에 대한 고발 사건을 소송 업무를 담당하는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에 배당한 게 도화선이었다. 박 위원장은 6일 원내정책회의에서 “과연 검찰 수사를 믿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또 한번 특검을 준비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물론 이날 발언은 수사를 제대로 하라는 ‘엄포’에 가깝다는 해석이 많다. 더민주도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기동민 원내대변인은 “검찰 수사를 지켜본 뒤 판단할 문제”라고 했다.
새누리당은 야3당이 전날 백남기 농민 특검 수사요구안을 낸 것만으로도 격앙된 상태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국정감사대책회의에서 “법제사법위원회 여야 합의를 거치지 않고는 어떤 특검안도 절대 본회의로 부의될 수 없다”며 “만약 정세균 국회의장이 또다시 야당 입장에서 백남기 특검안의 본회의 의결을 기도한다면 ‘제3의 정세균 파동’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이어 “국과수 부검과 현재 진행 중인 검찰 수사를 통해 실체적 진실을 밝히면 되는 문제”라고 잘라 말했다. 법사위 소속 새누리당 의원은 “과거 특검은 대부분 정권 차원의 대형 게이트를 대상으로 했다”며 “특검을 남발하는 건 권위를 깎아내리는 것”이라고 했다.
야권에선 말이 상설특검이지 개별 사건마다 특검법을 제정했던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특검법은 ‘국회가 정치적 중립성 등을 이유로 특검 수사가 필요하다고 본회의에서 의결한 사건’을 수사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수사요구안을 내면 본회의로 직행하는 것인지 주장이 엇갈리자 국회 사무처는 “상임위 심사를 거쳐야 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놨다. 야3당의 의석을 합하면 원내 과반이어서 본회의 통과는 가능하지만 법사위는 다르다. 위원장이 새누리당 소속이고 소위원회는 여야 동수인 데다 위원 3분의 1 이상이 요구하면 안건조정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어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상설특검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특별감찰관제처럼 상설기구가 있어야 한다”며 “지금처럼 제도만 있는 상황에선 논란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실제 2014년 2월 법사위 회의록을 보면 기구 특검을 관철하지 못한 야당의 아쉬움이 곳곳에서 읽힌다. 당시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민주당안을 고수하면서 협상을 깰 것인가, 아니면 그릇이라도 만들어놓고 검찰개혁의 화두를 이어갈 것인가 하는 고민 중에 현실론을 택했다”고 했다.
이정희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본질은 검찰 수사에 대한 불신”이라며 “여야가 자꾸 정쟁으로 몰아가면 나중엔 특검도 못 믿는 상황이 온다”고 했다.
글=권지혜 고승혁 기자 jhk@kmib.co.kr, 사진=이동희 기자
[기획] 野, 사안마다 ‘특검’· 與는 ‘저지’… 소모전 되풀이
입력 2016-10-06 18:02 수정 2016-10-06 2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