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5장에는 강력한 주도권 대결이 펼쳐집니다. 어린시절부터 전설적 영웅으로 성장해 왔던 위대한 장수요, 섬세한 시인, 감성 깊은 음악가였던 이스라엘의 왕 다윗이 나이 들어갑니다. 그러는 사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의 흠을 찾을 수 없는 외모와 따뜻한 가슴을 가진 젊은 아들 압살롬이 주도면밀한 계획과 강력한 욕망을 가지고 왕권에 도전합니다.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새로운 정권을 세우고 반역을 일으키자 그 즉시 다윗은 피난길에 오릅니다. 다윗은 얼굴을 가리고 맨발로 울면서 예루살렘을 떠납니다. 하지만 압살롬은 위풍당당한 군사들과 담대한 몸짓으로 다윗의 자리를 단숨에 차지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조금만 더 깊이 이 사건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압살롬과 다윗, 두 사람의 왕권 경쟁이라는 물결 아래에 무언가 흐르는 것이 있습니다. 은밀한 주도권의 경쟁입니다. 그것은 바로 압살롬의 왕권을 현실화시키는 모략가 아히도벨과 다윗의 모략가인 후새의 주도권 경쟁입니다. 먼저 아히도벨의 계략이 얼마나 탁월했던지 성경은 그의 말이 “하나님께 물어서 받은 말씀과 다를 바 없었다”고 기록할 정도입니다(삼하 16:23).
이에 맞서 다윗은 후새를 보냅니다. 즉 다윗과 압살롬 간의 표면적인 왕권 경쟁 아래에서는 아히도벨과 후새 사이의 심층적인 모략적 주도권 다툼이 흘러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도망가는 다윗을 일격에 제거할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아히도벨의 모략이 그보다 번거롭고 진부한 후새의 모략에 의해 거부된다는 사실입니다.
아히도벨은 1만2000명의 군사를 신속하게 밤에 투입시켜 기습적인 공격으로 다윗 왕만을 제거하자는 매우 탁월한 전략을 제시하지만 이상하게도 후새가 제안한 전략, 곧 압살롬을 비롯한 이스라엘 전 군대의 인해전술이 채택됩니다. 결국 이 어처구니없는 단 한 번의 선택과 실수로 아히도벨은 고향에 내려가 자살하게 되고 압살롬도 전장에서 처참한 죽음을 맞게 됩니다.
그 의구심은 이 모든 사건의 더 깊은 곳에 있는 가장 깊은 주도권을 발견하면서 해결됩니다. 성경은 “압살롬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아렉 사람 후새의 계략은 아히도벨의 계략보다 낫다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아히도벨의 좋은 계략을 물리치라고 명령하셨음이더라(삼하 17:14)”고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이십니다.”(잠 16:9) 잘 생각해 보십시오. 인생의 가장 선하고 귀한 주도권을 가지신 분이 하나님이라면,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이 맞습니까. 아니면 우리가 그분을 도와드리는 것이 맞습니까. 혹시 지금 나는 압살롬이나 아히도벨처럼 행하고 있진 않나요.
나의 젊음과 지식과 경험만 믿고 내가 원하는 대로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인생의 한 부분만 떼어 내어 그분께 적선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시간 건강 물질 관계 미래, 즉 인생 전부를 그분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삶의 모든 자리에서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단 하나의 질문에 목숨을 걸고 대답해야 합니다. 질문은 이것입니다.
“지금 내 인생의 주도권은 누가 잡고 있습니까?”
강산 목사 (군포 십자가교회)
◇약력=△성결대신대원 졸업 △수원 평양신학교 성서신학 강사 △‘나는 진짜인가’ ‘기도를 시작하는 당신에게’ 저자
[오늘의 설교] 내 인생의 주도권
입력 2016-10-06 20: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