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잃은 돈은 원래부터 없던 돈이었다. 꿈속에서 하나님은 바로 그 부분을 지적하셨던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물질과 사랑을 주었다, 다 내려놓아라, 남편도 용서하지 못하면서 누굴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느냐….
남편을 깨워 차를 몰고 한적한 곳으로 바람을 쐬러 갔다. 갈등을 빚으며 산지도 한 달이 지났다. 차를 타고 가면서 모처럼 마음을 내려놓고 대화를 이어갔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문득 “당신 차를 바꾸는 건 어떨까?”라고 물었다. 물론 그럴 상황은 아니었지만 예전부터 차를 바꾸고 싶어 하던 남편의 말이 떠올라 제안한 것이다. 사실 이 시점에서 우리 부부에겐 뭔가 분위기를 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했다. 나의 제안에 남편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 보였다.
매달 돌아오는 어음은 살고 있던 서울 방배동의 아파트를 처분해 만기가 돼 돌아온 어음부터 결제해 나가는 방법으로 해결해갔다. 부족한 부분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갚아나갔다. 그러면서 스스로 다짐했다. ‘주님께 하듯 남편을 대하자. 일절 남편에게 어음과 관련해 묻지 말자. 모든 걸 감당해나가자.’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수 1:9) 강하고 담대하게 모든 걸 감당하니 거짓말처럼 행복이 찾아왔다.
그 무렵 온누리교회 양재성전에서 예수제자학교가 개설돼 학생을 모집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주저하지 않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원서를 접수하고 주님 앞에 나아가 기도와 말씀으로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새롭게 거듭나지 않으면 나도 인간인지라, 아주 가끔씩 치밀어 오르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마음에 병으로 남을 것 같았다. 주님만 바라보고 갈 수 있는 힘이 필요했다. 6개월 코스의 예수제자학교를 마쳤을 때 가장 큰 변화는 남편을 제대로 이해하게 됐다는 것이다. 남편 역시 교회 공동체 순모임 활동과 아버지학교를 통해 거듭났다. 그렇게 좋아하던 골프와 테니스를 끊고 교회사역을 삶의 최우선 순위에 뒀다.
요즘 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재무회계를 강의하면서 어음의 회계처리와 어음의 종류, 어음의 할인·부도 등에 대해 가르치기도 한다. 어음에 대해 강의할 때면 남편 이야기를 꼭 한다. 그러면서 변호사가 말했던 세 가지 방법을 예로 들며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지를 묻는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첫 번째 방법인 이혼을 택한다. 하지만 남편과 신용을 택한 나의 결단을 들려주면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우수천석(雨垂穿石)이라는 말은 ‘떨어지는 빗방울이 돌을 뚫는다’라는 뜻이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적극적으로 돌파구를 마련한다면 해결하지 못할 일이 없다는 의미다. 인간은 고통을 통해 성장한다고 생각한다. 살면서 한 번쯤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 고통을 어떻게 견뎌내느냐 하는 데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한다면 두려울 게 없다. 주님과 좀 더 친밀해지는 시간들을 통해 우리 부부는 온전한 신앙인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문제는 처한 환경이 아니라 우리의 자세에 있다.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역경의 열매] 김정란 <10> ‘주님께 하듯 남편 대하자’ 행복 찾아와
입력 2016-10-06 20: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