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부희령] 냄새의 기억

입력 2016-10-06 17:31

후각은 쉽게 피로하는 감각이지만, 기억으로는 가장 오래 남는다고도 한다. 돌이켜보면 어떤 냄새들은 아련하거나 그리운 기억들을 속삭이듯 끄집어내곤 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달콤한 냄새는? 우리 엄마 냄새. 학교 끝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가 없으면 옷장 문을 열고 엄마 옷을 꺼냈다. 그리고 옷에 코를 박고 한참 냄새를 맡았다. 서러움과 위로가 동시에 밀려왔다. 사람들이 배우자를 구할 때 무의식적으로 자기 어머니나 아버지와 체취가 비슷한 사람을 찾는다는 이야기가 아주 터무니없지는 않은 것 같다.

눈을 감고 냄새를 맡게 한 뒤 어느 계절인지 알아맞혀보라고 하면 다른 계절은 몰라도 가을만은 알아차릴 수 있을 것 같다. 가을볕에는 고추와 벼와 들깨를 말리고, 호박과 가지와 감을 썰고 깎아서 널어놓는다. 무르익은 열매들은 영혼처럼 짙고 가벼운 것들을 공기 속으로 날려 보낸다. 서늘한 새벽이슬에 젖은 흙은 회한 같은 체취를 토해내고. 이 모든 냄새는 길지 않게 머무는 가을 속을 떠돌다 사라진다.

코끝이 매캐하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냄새로 기억되는 것은 저녁이다. 버스정류장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다가, 오래 기다리던 버스가 다가오고, 마침내 문이 열리고, 기다리던 사람이 버스에서 내리는지 초조한 마음으로 기웃거리고, 그러나 아무도 내리지 않은 채 문이 닫히고, 버스는 그냥 가 버린다. 그런 일이 서너 차례 되풀이된 뒤 누구라도 혹은 무엇이라도 꼭 올 것 같은 기대만 정류장 표지판 근처에서 맴도는 연기처럼 남겨둔 채 돌아온다. 저녁은 현관문을 잠그며 기다림을 내일로 미루는 시간.

냄새에 관한 재밌는 문장을 커트 보네거트의 책에서 발견한다. ‘인간은 춤추는 동물이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고 대문을 나서서 뭔가 한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우리가 지구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냄새를 피우기 위해서다. 누군가 다른 이유를 대면 콧방귀를 뀌어라.’

부희령(소설가),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