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작가 응구기 와 티옹오(78·사진)의 대표 장편 ‘한 톨의 밀알’(은행나무)이 출간됐다. 올해 노벨문학상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응구기 소설의 최정점’이라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1967년 발표된 이 작품의 시간적 무대는 1963년 12월 12일 케냐 독립일을 전후한 단 며칠에 집중돼 있다. 그러면서 50년대 마우마우 독립운동, 20년대 격변기, 나아가 케냐의 전 역사를 아우르는 역동적인 대서사를 펼친다.
케냐 독립일 직전, 평범한 농부 무고에게 마을의 원로 와루이, 무장독립투쟁의 영웅 키히카의 매제 기코뇨, 독립운동에 가담했던 여성 왐부이, 게릴라 활동의 주역 R장군 등이 찾아오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무고는 영국인 경찰서장을 암살한 키히카를 숨겨주었고, 강제노동 중 채찍질 당하던 여성을 구하다 강제수용소에 끌려갔다. 또 단식투쟁을 통해 수용소의 참상을 세상에 알린 인물이다. 이들은 무고에게 독립일 기념식 연설을 부탁하러 왔다. 또 키히카를 배반해 넘긴 백인 앞잡이 카란자를 잡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했다.
작가는 이어 노회하게 시점을 바꾸며 식민지 케냐를 살아가는 다양한 인물 군상의 과거와 현재를 펼쳐 보인다. 배반과 고뇌의 무고, 투쟁과 희생의 키히카, 기회주의와 변절의 카란자, 갈등과 성장의 기코뇨 등을 통해 자유를 향한 인간의 무서운 갈증, 동전의 양면처럼 또한 존재하는 개인적 탐욕 등을 드러낸다. 그러면서 사랑과 배신이라는 인간사의 갈등이 또 다른 축을 형성하고 있다. 기코뇨는 가난한 목수인데도 키히카의 여동생 뭄비의 마음을 얻었으나, 신혼의 단꿈에 빠지기도 전에 수용소에 끌려가고 만다. 6년 만에 돌아왔으나 뭄비는 이미 연적 카란자의 아이를 낳은 뒤였다.
작가는 3인칭 전지적 시점을 통해 특정 영웅적 인물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지 않고, 식민지 시대 고통의 강을 건너온 모든 이들을 두루 껴안는다. 이는 작가가 마지막 장의 제목으로 한 ‘하람베’ 즉 ‘공동체 정신’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하나 작품을 관통하는 것은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지식인으로 케냐에서 경찰서장과 수용소장을 지낸 존 톰슨은 제국주의적 자기모순의 상징이다. “채찍을 써야 한다. 어떤 정부도 무정부 상태를 용인할 수 없으며 어떤 문명도 이러한 폭력과 야만성 위에 건설될 수 없다.”
1938년 영국 식민지였던 케냐에서 태어난 응구기는 영국 리즈대학교 대학원 시절인 64년 첫 소설 ‘울지 마라, 아이야’를 발표하며 문단에 이름을 알렸다. 77년 신식민주의 문제를 파헤친 역작 ‘피의 꽃잎들’을 낸 뒤 독재정권에 의해 옥고를 치르고 82년 케냐를 떠났다.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어바인캠퍼스에 교수로 있다. 왕은철 옮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책과 길] 투쟁… 배신… 케냐의 역동적 근대 대서사시
입력 2016-10-06 2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