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아름다움이라는 여성 억압 이데올로기

입력 2016-10-06 21:12

페미니즘의 역사에서 21세기 초반은 ‘세 번째 물결’로 간주된다. 미국의 사회비평가 나오미 울프(54)는 ‘세 번째 물결 페미니즘’을 선도하는 이론가로 꼽힌다. 1991년 그녀가 28세의 나이에 출간한 ‘The Beauty Myth(아름다움의 신화)’는 이 흐름을 대표하는 저작이다.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책’ 중 하나로 평가되기도 하는 이 책이 한참 늦게 한국에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라는 이름으로 도착했다. 출판사는 번역까지 다 마치고도 한참이나 묵혀놨던 이 책을 출간하면서 그 배경으로 최근 젊은 여성들의 페미니즘 열풍을 언급했다.

“여성이 가정이라는 여성의 신비에서 벗어나자, 아름다움의 신화가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해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울프의 문제의식은 여기서 출발한다. ‘두 번째 물결 페미니즘’이 베티 프리단이 1962년 ‘여성의 신비’라는 책에서 공식화한 가정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면, 울프는 아름다움의 신화를 “여성에 관한 낡은 이데올로기 가운데 마지막으로 남은 것”으로 지목한다.

울프는 이 책에서 일, 문화, 종교, 섹스, 굶주림, 폭력 등 6개 영역에서 아름다움이라는 신화가 어떻게 작동하고, 어떻게 여성의 육체와 정신을 파괴하는지 드러낸다. 그는 여성에게 주로 문화적인 방식으로 강요되는 아름다움이라는 압력은 어떤 역사적·생물학적 근거도 없으며, 신체기준에 따라 여성의 가치를 매겨 수직으로 줄을 세우는 권력관계의 표현이고, 다른 어떤 것보다 여성을 가두기에 좋은 사회적 허구라고 주장한다. 그는 “여성은 여성의 몸을 바꿀 필요가 없다. 여성이 바꿔야 하는 것은 규칙이다”라고 말한다.

울프는 특히 아름다움이라는 신화가 여성의 진보를 가로막는 정치적 무기로 사용되고 있고, 여성들이 그동안 거둔 자유와 권리를 내면적으로 무력화시키고 있다는 점을 예리하게 지적한다. 또 여성운동이 모든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1980년대의 이야기들을 “사악한 거짓말” “터무니없는 희망” “역사적 플라시보”라고 비판하면서 새로운 페미니즘을 요청한다.

김남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