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후 1시쯤. 전북 전주시 서노송동의 한 골목에 들어서자 휑한 ‘쪽방’들이 보였다. 4개의 방은 벽채만 남아 있고, 3개의 방엔 ‘신문기사 인쇄물’ ‘철거 당시 곤충과 물품’ ‘소설 오동나무 서랍’ 등이 전시돼 있었다. 땅의 중앙엔 판자가벽이 세워지고 실타래 같은 공구들과 나무 계단이 놓여졌다. 한쪽 벽에선 철거 장면 등을 담은 영상물이 계속 나왔다.
전주시 완산구 물왕멀2길 5-4번지. 전주시청 뒤편에 있는 이 일대는 성매매업소가 모여 있는 ‘선미촌’이다. 마을 중심에 있는 이 빈집에서 이날 뜻깊은 전시회가 열렸다. 작가는 소보람(32·여)씨로 ‘눈동자 넓이의 구멍으로 볼 수 있는 것’이라는 주제의 설치미술전.
9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회는 전주시와 여성·인권단체 등이 힘을 모아 추진해 온 선미촌 문화재생사업의 첫 번째 결과물이다. 이 사업은 민선6기 전주시 핵심사업의 하나다. 시는 2022년까지 67억원을 들여 빈집과 성매매업소 등 4필지의 토지와 건물을 매입해 인권·문화·예술거점 공간으로 활용하고, 일대 기능을 점차 바꿔 시민예술촌으로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이날 개막식에는 김승수 전주시장과 주민 등 100여명이 참가했다. 지난 5월부터 소씨는 설치미술 작업을 준비하고, 강성훈씨는 이 터를 배경으로 소설 ‘오동나무 서랍’을 썼다.
소씨는 “이곳은 모든 이에게 열려 있지만 모든 이에게 향해있지 않으며 누군가에게는 마음에 꺼려 피하는 장소”라며 “지난봄부터 가을이 오기까지 소설가 강성훈씨와 이 장소가 가진 가능성에 관해 서로 다른 2개의 형식(하나는 시각언어, 다른 하나는 텍스트)으로 추적했다”고 말했다. 전주시는 그동안 성매매 집결지 정비사업이 공권력이 동원돼 강제로 행해져왔던 것과는 달리 시민단체와 힘을 모아 문화예술을 통해 열린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에 전주시와 전주문화재단은 320㎡ 규모의 이 빈집을 산 데 이어 앞 건물도 샀다.
선미촌은 1950년대 성매매업소가 하나둘 모여들어 호황을 누리다가 강력한 단속에도 지난해 초까지 40여개의 업소에 88여명이 머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시의 이 같은 작업의 영향으로 1년 새 절반 정도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시는 연말까지 선미촌 내 공간에 대한 기록탐색과 기획전시, 생활창작 공간 체험활동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김승수 시장은 “갇혀 있던 곳에 60년 만에 변화가 찾아왔다. 철거와 토목을 전제로 하는 전면개발 방식보다는 예술 재생을 선택했다. 아픈 장소에서 행복한 공간으로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전주=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
전주 ‘집창촌’, 인권·예술의 거리 탈바꿈
입력 2016-10-06 0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