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계획을 담은 파리기후협정이 다음 달 정식 발효된다. 예상 밖의 빠른 속도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아직 비준 절차를 마치지 못한 나라에 압박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다만 협정이 발효돼도 실제 이행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있다. 협정 발효를 주도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임기 막바지에 큰 성과를 냈다는 평가도 나온다.
유럽연합(EU) 의회는 4일(현지시간) EU 집행위원회가 제출한 파리기후협정 비준동의안을 찬성 610표, 반대 38표, 기권 31표로 통과시켰다.
기후협정이 발효되려면 최소 55개국 이상 및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55%를 담당하는 국가가 의회에서 협정을 비준해야 한다. 지금까지 배출량의 52%를 책임진 62개국이 비준해 두 번째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배출량의 12.1%를 차지하는 EU 28개 회원국이 한꺼번에 비준해 발효 조건이 확보됐다. EU 의회는 7일 비준 결과를 유엔에 제출한다. 파리기후협정은 이후 30일이 지나면 발효된다.
파리기후협정은 지난해 12월 파리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196개국이 참여해 체결됐다. 2020년부터 온실가스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여 지구의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수준보다 2도 이상 오르지 않도록 유지하는 게 목표다. 온도가 더 오르면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상승하거나 폭염, 전염병 확산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파리기후협정은 202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안을 담은 교토의정서와 달리 선진국뿐 아니라 개발도상국에도 감축 의무를 부과한 것이 특징이다. 개도국으로 분류된 우리나라도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배출전망치(BAU) 대비 37% 줄인다는 목표를 유엔에 제출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비준 전망은 불투명하다. 정부가 국회에 협정안을 제출했지만 아직 심의도 시작하지 못한 채 계류돼 있다. 특히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를 비롯한 산업계 전반에서 “파리기후협정은 또 다른 암 덩어리 규제”라고 강하게 반발해 실제 심의에 착수할 경우 반발 여론이 거세게 일 전망이다.
그러나 다음 달 협정이 정식 발효되면 처리 압박은 더욱 커지게 된다. 특히 여권의 유력한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반 총장이 실제로 영입될 경우 비준안 처리에 탄력받을 수 있다.
그러나 전 지구적으로는 잘 이행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당장 미국의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면 즉각 협정에서 탈퇴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중국에 이어 탄소배출량 2위인 미국이 탈퇴하면 협정 자체가 무산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감축목표를 제출하는 것만 의무조항일 뿐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맹점도 있다. 각 국가의 목표가 자발적으로 수립되고 이행 여부도 자발적으로 노력할 사항으로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가 기후변화에 대응하려는 공통된 의지를 보인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특히 협정 체결 뒤 발효까지 8년이 걸렸던 교토의정서와 달리 단 1년 만에 발효 조건을 충족한 것은 미국과 중국의 결단과 함께 반 총장의 정치력이 크게 작용했다는 평가가 많다. 이 협정 체결로 노벨 평화상 후보로 거론됐던 반 총장의 위상이 한층 높아질 것이란 관측도 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최후 관문 넘었다”… 파리기후협정 내달 발효
입력 2016-10-06 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