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고양시 한 버스회사에서 일하는 A씨는 정년이 끝난 뒤 촉탁직으로 고용됐다. 생계는 1년마다 돌아오는 계약 갱신에 달려 있는 상황이었다. A씨와 같은 처지의 버스기사가 몇 명 더 있다. 이들에게 인사 채용을 담당하는 인사총괄책임자 권모(61)씨나 재계약 인원 추천권을 가진 노동조합위원장 심모(61)씨, 노동조합 총무 오모(58)씨는 하늘같은 ‘갑(甲)’이다.
밉보이면 이런저런 사유를 붙여 재계약을 해주지 않았다. 명절마다 ‘떡값’을 쥐어주거나 밥을 사는 식의 ‘정성’이 필요했다. 심씨는 촉탁직 기사들에게 자신의 밭에서 농사일을 시키기도 했다. 밭일을 빠지면 “바쁘냐”는 핀잔이 돌아왔다.
‘악습’은 10년 가까이 이어졌다. 권씨 등이 A씨를 포함한 촉탁직 3명에게 받아 챙긴 돈만 1900만원에 달했다. 경기 일산경찰서는 지난달 23일 권씨와 오씨에게 배임수재 혐의를, 심씨에게 배임수재와 협박 혐의를 적용해 검거했다.
경찰청은 지난달 1일부터 ‘갑질 횡포’ 100일 특별단속을 벌였다. 한 달 동안 1289건을 적발하고 1702명을 검거해 69명을 구속했다고 5일 밝혔다.
갑질하는 이들은 누구였을까. 경찰이 적발된 가해자를 분석한 결과 주로 40대 이상의 남성이었다. 남성(89.6%)이 압도적이었고 연령별로 50대(29.8%) 40대(27.2%)가 절반을 넘었다. 30대(18.3%)나 20대(8.8%), 60대(12.1%) 비중은 낮았다. ‘블랙컨슈머 갑질’의 경우 직업별로 무직자(32.8%) 회사원(18.3%) 자영업자(17%) 등이었다.
갑질 여성은 10.4%에 불과했다. 을의 직업은 자영업자(25.0%) 회사원(19.8%) 종업원(11.5%) 학생(8.2%) 일용직노동자(5.2%) 시장 상인(2.6%) 공무원(1.3%) 경비원(1.2%) 등이었다. 연령별로 50대(26.2%)가 가장 많고 40대(22.6%) 10·20대(22.2%) 30대(16.1%) 순이었다. 특히 10·20대 피해자(150명)의 절반 이상인 87명은 성범죄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많이 적발된 갑질 형태는 블랙컨슈머(59%·769건)였다. 지난 8월 23일 휴대전화대리점 안에서 담배를 피우다 이를 말리는 종업원의 뺨을 때려 경남 함양경찰서에 검거된 성모(46)씨가 대표적이다. 블랙컨슈머들에게는 폭행·상해(64%) 업무방해(24.9%) 재물손괴(6.6%) 등 혐의가 적용됐다.
나머지 갑질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사회적 약자에게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41%·520건)이었다. 이 가운데 직장이나 단체 내 금품착취(횡령)·폭행 등 불법행위가 150건(28.8%)을 차지했다. 이어 직장·학교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한 성범죄 86건(16.5%), 외국인 노동자 등 사내 근로자 임금 착취·원청업체 기술 빼돌리기 등 불공정 거래행위 30건(5.8%) 등이었다.
경찰은 “갑질은 음성화되기 쉬운 만큼 적극적인 신고와 제보가 필요하다”고 협조를 당부했다. 특별 단속은 12월 9일까지 계속된다.
글=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 삽화=이은지 기자
‘甲질 공화국’ 男이 89%… 열 중 여섯은 블랙컨슈머
입력 2016-10-06 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