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에게 5일(한국시간)은 짧고도 긴 하루였다.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처음 맞는 포스트시즌의 경험! 낯선 땅, 낯선 야구문화가 그의 몸과 정신을 종일 채운 날이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 소속 김현수는 캐나다 온타리오주 토론토 로저스센터에서 열린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아메리칸리그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나왔다. 그것도 2번 타자 겸 좌익수로 선발 출전했다. 한국인 타자로서 텍사스 레인저스 추신수 이후 두 번째로 빅리그 무대에 입성한 것이다.
7회말 수비에 나선 그에게 일어나선 안될 일이 벌어졌다. 7회말 2사에서 멜빈 업튼 주니어의 타구를 잡으려 뛰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김현수 옆으로 맥주로 추정되는 음료수 캔이 날아왔다. 아찔한 상황이었다. 만약 플라이볼을 잡던 김현수가 캔을 맞았다면 큰 부상을 당할 뻔했다. 높은 곳에서 날아온 캔은 거의 둔기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캔은 옆에 떨어졌고, 김현수는 공을 잘 잡았다.
그는 경기후 인터뷰에서 “그렇게 가깝게 정확히 날아올 줄은 몰랐다. 그런 일은 처음”이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몰상식한 짓을 한 관중은 김현수를 향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욕설을 퍼부어댔다. 그때 영어가 서툰 김현수를 대신해 중견수 아담 존스가 나섰다. 존스는 그 관중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언쟁을 벌였다. 존스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경기에 집중하는데 그런 해를 가하는 행동은 경기의 일부가 아니다”고 했다. 이어 “김현수를 향한 인종차별적인 욕설도 들었다. 그 사람을 찾아내 고소하길 바란다”고도 했다.
무심할 정도로 김현수에게 냉정했던 벅 쇼월터 감독도 이닝이 끝난 후 심판에게 격렬히 항의했다. 쇼월터 감독은 “정말 실망스럽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 선수들을 다치게 하는 게 싫다”고 했다.
김현수는 첫 빅리그 포스트시즌 데뷔 무대에서 동료애라는 값진 선물을 안았다. 그는 “내가 영어가 안되니까 존스가 대신 싸워줬다. 좋은 동료가 있어 든든하다”고 했다.
김현수는 큰 기대를 안고 올 시즌 볼티모어에 왔지만 스프링캠프에서 1할대 타율(0.178)에 허덕여 개막 직전 구단의 마이너리그 제안을 받았다. 이를 거부하고 개막 엔트리에 포함됐지만 아무도 반기지 않았다. 홈 개막전 선수 소개 때는 관중에게 야유를 당하는 수모도 겪었다. 당연히 시즌 초 그는 타석에 들어설 기회가 없었다. 원래 말수가 없던 김현수가 자주 더그아웃에서 혼자 외로이 경기를 지켜보는 장면이 TV에 포착돼 많은 한국팬들의 마음을 안쓰럽게 했다.
하지만 간간히 얻은 타격 기회에서 깊은 인상을 심어준 뒤 시즌 중반부터 주전으로 발돋움했다. 결국 올 시즌 타율을 3할대(0.302)로 마쳤다. 특히 지난달 29일 토론토전에선 팀이 1-2로 뒤진 9회 1사 1루에서 대타로 나와 승부를 뒤집는 투런포를 터트려 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김현수는 모든 난관을 뚫고 빅리그 포스트시즌에 입성했다. 그리고 동료들의 믿음과 애정까지도 얻었다.
다만 한국에서 숱하게 가을야구를 경험한 김현수도 이런 큰 무대는 낯설었다.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몸이 굳어 보였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타석에 들어섰지만 4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볼티모어는 결국 단판 경기인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2대 5로 패하며 디비전시리즈 진출이 좌절됐다. 2-2로 맞서던 연장 11회말 에드윈 엔카나시온에게 스리런포를 맞고 무너졌다.
그렇게 김현수의 메이저리그 첫 가을야구도 끝났다. 팀 패배로 추신수와의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 한국인 타자 맞대결도 무산됐다. 김현수는 경기 후 “많이 아쉬웠다. (한국의 포스트시즌과) 똑같이 하면 되는데 처음 겪으니 이것저것 생각이 많았고 소극적이고 급했던 것 같다”고 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
김현수의 ‘가을야구’… 짧지만 특별했다
입력 2016-10-06 0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