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주박 닮은 ‘서봉총’ 신라인 매장문화 확인

입력 2016-10-05 18:08
일제강점기 이후 처음으로 정식 재발굴 조사를 마친 서봉총의 남분이 5일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까지 알려진 원형이 아니라 타원형 구조를 하고 있는 것이 이번 조사로 확인됐다. 서봉총은 크기가 다른 두 개의 무덤이 연접한 쌍분 구조다. 서봉총에서 통상 여성 무덤에서 출토되는 굵은 귀고리가 나와 마립간(왕)의 아내 등 마립간과 관련 있는 혈족의 무덤일 것으로 학계는 추정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황태자 폐하, 금관을 수습하시지요.”

일제강점기인 1926년 조선총독부는 경주 노서리 129호분을 발굴했다. 일본 황실은 당시 일본에 신혼여행 중이던 스웨덴 황태자 구스타프 6세 아돌프(1882∼1973)에게 조선의 고분 발굴 참여를 권했다. 그는 고고학자로 동양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황태자는 발굴의 마지막 순간 신라의 옛 무덤에서 봉황 장식의 금관(보물 제339호·서봉총 금관)을 꺼내는 행운을 누렸다. 그리하여 스웨덴의 한자 표기인 ‘서전(瑞典)’과 ‘봉황’ 장식에서 한 글자씩을 딴 서봉총이 일제가 유물에만 눈독을 들인 부실 발굴 90년 만에 온전히 재발굴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6일 오후 2시 경주 현장에서 재발굴 성과를 공개한다고 5일 밝혔다. 서봉총은 금관이 나온 북분과 이어 일제가 3년 뒤 발굴한 남분 등 크기가 다른 2개의 무덤이 연접한 표주박 형태의 구조다. 이번 재발굴은 규모가 작은 남분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조선총독부는 서봉총 발굴 당시 앞서 1921년 신라무덤(금관총)에서 금관이 나온 터라 금관 등 무덤 속 유물 발굴에만 급급했다. 실제 서봉총에서도 높이 35㎝, 지름 18㎝의 서봉총 금관을 비롯해 금공예품, 토기, 철기, 장신구 등 유물 570여점이 출토됐다. 무덤 구조 등 학술 조사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다. 무덤 도면 등 정식 보고서도 간행하지 않았다.

이번 조사에서는 일제강점기 부실 발굴 조사를 메울 수 있도록 무덤이 어떻게 조성됐는지와 시신이 묻힌 무덤 주변의 유물을 찾아내는 데 주력했다.

재발굴 결과 봉황 장식 금관이 출토된 북분을 만든 이후 남분을 만들었고, 남분은 원형이 아니라 타원형(길이 25m)이며, 남분 크기가 북분의 절반에 그쳐 다른 쌍분과는 다른 점, 남분과 북분의 중심을 잇는 축의 방향 등을 확인했다. 남분의 형태가 원형일 것으로 조사 이전에 추정한 것과 달랐다. 또 봉토 주위에서 큰항아리로 제사 지낸 사실 등을 확인하는 성과를 올렸다. 제사에 사용한 큰항아리는 12점이나 발굴됐는데, 이는 지금까지 조사한 신라 능묘 중 가장 많은 수치다.

발굴 조사에서 확인한 남분의 구조, 규모, 축조 방식과 제사는 무덤 주인공의 성격, 신라인의 매장 관념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자료가 된다. 황남대총 등 신라시대 몇몇 무덤은 쌍분으로 되어 있다. 학계에서는 부모자식 혹은 친연관계일 것으로 추정한다. 서봉총의 북분은 내년까지 발굴 조사를 마친다는 계획이다.

고고학부 박진일 학예연구사는 “서봉총의 축조 방식인 적석목곽분(돌무지덧널무덤)은 4∼5세기 내물왕, 눌지왕 등 마립간 시대의 무덤 형식으로 특히 무덤 구조 파악이 학술 연구에 중요하다”면서 “그동안 막연히 추측만 했는데 이번 조사를 통해 신라 능묘 연구에 좋은 기초자료를 마련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