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회. 베트남전 참전용사 이순우(68)씨가 1972년부터 45년간 헌혈한 횟수다. 두 달에 한 번꼴로 자신의 피를 나눈 셈이다. 그는 71년 베트남전에서 부상 입은 동료가 피가 모자라 죽어가는 아픔을 겪은 후 헌혈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헌혈은 16세부터 70세까지 가능하다. 그가 헌혈할 수 있는 기간은 2년 정도 남았다. “70세까지 꾸준히 헌혈하기 위해서라도 건강한 몸을 유지하겠다”는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가슴 한편이 뭉클해졌다.
야구를 좋아하는 평범한 사춘기 소년 김문경(14)군. 여느 또래들과 다를 바 없이 건강해 보이지만 그는 2013년 급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지금도 두 달에 한 번 외래 치료를 받는다. 누구보다 헌혈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는 김군의 어머니는 “일상처럼 이뤄졌던 수혈이 문경이의 생명을 살려줬습니다. 헌혈해주신 분들이 있었기에 우리 문경이가 살았습니다”라며 헌혈한 분들에게 감사해했다. 최근 백혈병 투병 중인 전북의 한 고등학생에게 헌혈증 330장이 기부됐다. 제주도를 포함해 전국의 학생들이 동참했다고 한다.
헌혈은 생명을 나누는 숭고한 활동이다. 그 사연이 감동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헌혈에 있어선 우리나라 ‘어른’들은 본보기가 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헌혈자의 상당수(77%)는 10∼20대이고, 30대 이상은 23%에 불과하다. 반면 일본은 10∼20대가 24%, 30대 이상이 76%이고, 프랑스도 각각 35%, 65%를 차지한다.
최근 우리나라는 저출산 고령사회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 헌혈자의 77%를 차지하는 10∼20대 인구는 계속 감소하고, 수혈자의 73%를 차지하는 50대 이상 인구와 백혈병, 심장병, 수술이 필요한 환자 수는 지속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지금같이 중장년층 헌혈 참여가 저조하면 10∼20대 헌혈률이 10%만 감소해도 5년 내 혈액 부족 사태가 올 수 있다. 군부대, 직장을 중심으로 자발적 헌혈 릴레이가 이뤄지고 있으나 아직은 사회적 분위기로 확산되지 않고 있다.
의과학 발달에도 혈액은 아직까지 대체물질도, 인공적으로 만들어낼 수도 없다. 아무리 비싼 고급식당 음식이라도 부모의 정성이 담긴 밥상을 대신할 수 없듯이, 첨단 정보통신기술 시대에 살아도 아픈 생명을 살리는 데 가장 절실한 것은 국민의 헌혈이다. 최근 10년간 정부는 국민들이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헌혈할 수 있도록 전국에 100여개 헌혈의 집을 확충하고, 헌혈 장비 교체와 혈액검사센터 현대화 등에 1375억원을 투자했다. 그리고 966개 학교, 공공기관, 기업체와의 헌혈 약정을 통해 정기적으로 단체 헌혈을 진행하고 있다. 또 매년 헌혈자의 날을 정해 헌혈자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표시로 표창과 소정의 기념품을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해외 선진국에 비해 10∼20대의 헌혈 비율은 작지 않으나 30대 이상 중장년층의 헌혈률이 보여주듯 우리 어른들의 생명나눔에 관한 관심이 크지 않은 거 같아 마음에 걸린다.
10월에는 자녀들의 손을 잡고 집 주변 헌혈의 집을 들러보는 것은 어떨까. 부모들이 직접 실천하는 생명나눔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아이들에게 몸소 보여주는 ‘산교육’을 해보자. 직장동료와 함께 직장 주변 헌혈의 집을 들러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서로 힘들고 어려워도 더 힘들고 더 아픈 사람을 배려하는 나눔의 실천, 내가 나눠준 혈액으로 아픔을 겪고 있는 또 다른 문경이를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이 어쩌면 나를 마음이 따뜻한 부자로 만들어주는 길은 아닐까. 우리 어른들이 생명나눔을 실천하는 헌혈의 의미와 그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았으면 한다. 제2, 제3의 이순우씨가 계속해서 나타나길 기대해 본다.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
[특별기고-정진엽] 생명을 나눕시다
입력 2016-10-05 18:32 수정 2016-10-05 2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