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초’로만 보지마세요, ‘흥행 주연’입니다

입력 2016-10-05 00:02
뛰어난 연기력과 개성 넘치는 캐릭터를 통해 신스틸러로 부상한 배우들. 왼쪽부터 영화 ‘부산행’에서 악독한 승객으로 소름 돋는 연기를 보여준 김의성, ‘밀정’에서 부하에게 뺨 때리는 장면으로 눈길을 사로잡은 엄태구, ‘아수라’에서 악의 고리 불량배를 리얼하게 표현한 김원해. 각 영화사 제공

‘신스틸러(Scene Stealer)’가 뜨고 있다. 직역하면 ‘장면을 훔치는 사람’을 뜻하는 신스틸러는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훌륭한 연기력이나 독특한 개성을 발휘해 주연 이상으로 주목받는 조연을 말한다. 조연이 살아야 주연이 살고 스토리가 풍부해지면서 재미도 배가된다.

최근 흥행에 성공한 영화에는 어김없이 신스틸러가 존재했다. 200만 관객을 돌파한 ‘아수라’에서 불량남자 ‘작대기'로 나오는 김원해(47), 700만명을 불러 모은 ‘밀정’에서 조선인 출신 일본경찰 하시모토 역을 맡은 엄태구(33), 1100만 관객을 동원한 ‘부산행’에서 혼자 살기 위해 악행을 서슴지 않는 승객 용석 역의 김의성(51)이 대표적이다.

세 배우의 공통점은 무명시절 연극무대에서 실력을 갈고 닦았다는 것이다. 서울예술대학 연극과를 나온 김원해는 1991년 뮤지컬 ‘철부지들’로 데뷔해 2008년 제1회 올해의 연극인상을 수상하기까지 20년 가까운 세월을 무명으로 지냈다. 배우 류승룡과 함께 ‘난타’의 주방요원으로 무대에 서기도 하는 등 해보지 않은 배역이 없을 정도였다.

김원해의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건 17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명량’이었다. 이순신 장군(최민식)을 배신하고 배를 타고 떠나다가 화살에 맞아 죽는 배설 역을 맡았다. ‘아수라’에서는 스스로 머리를 빡빡 깎고 실제 마약중독자 같은 모습으로 촬영에 들어가 존재감을 드러냈다. 사건의 중심에 놓인 작대기라는 캐릭터를 훌륭히 만들어냈다.

‘밀정’의 엄태구는 부하들에게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수십 차례 뺨을 때리는 장면으로 단번에 관객을 사로잡았다. 허스키한 중저음의 목소리, 똑바로 쳐다보지 못할 정도로 매서운 눈매, 도드라진 광대뼈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송강호(이정출 역)와의 대결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연기를 통해 신스틸러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그는 고등학교 때 교회 성극을 한 게 계기가 돼 건국대 영화학과에 진학했다. 2007년 영화 ‘기담’으로 데뷔한 후 ‘잉투기’(2013), ‘차이나타운’(2014), ‘베테랑’(2015) 등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 같은 극단에서 활동하던 송강호의 추천으로 ‘밀정’에 캐스팅된 그는 아무도 쉽게 흉내 내지 못하는 신들린 듯한 연기로 김지운 감독과 송강호의 믿음에 화답했다.

‘부산행’의 김의성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와 배우가 된 이색 경력의 소유자다. 1987년 극단에서 연기를 시작해 95년 영화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로 데뷔한 그는 이듬해 홍상수 감독의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주연을 맡아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이후 10년간 사업을 한다며 연예계를 떠났다가 ‘북촌방향’(2011)으로 컴백했다.

그는 ‘관상’(2013)에서 수양대군(이정재)을 돕는 한명회 역으로 여전한 연기력을 입증했다. ‘암살’(2015)에서는 친일파 강인국(이경영)의 집사로 감초 연기를 선보였다. 최근 종영된 드라마 ‘W’에서도 강한 캐릭터로 눈길을 끌었다. ‘부산행’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신스틸러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