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의 끝은 어디일까. 그 결과는 어떨까. 후유증은 어떻게 나타날까. 무책임과 무능력은 쌍으로 같이 다닌다는데 정말 그런가. 요즘 대한민국을 보면 나오는 질문들이다.
지난 10일 남짓 동안의 정치는 블랙코미디 자체다. 야당은 국회 권력이 교체됐음을 과시하기 위해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업무가 시작되자마자 해임건의안을 냈고, 국회의장은 취임사에 이어 당적 이탈 취지를 애써 무시해가며 국회를 운영했다. 여당 대표는 단식까지 했다. 모기 잡는데 칼 휘두르는 격이다. 와중에 품격 없이 오가는 거친 언동은 국회의원 개개인과 우리 정치의 용렬함을 드러냈다. 그런 언동을 잘했다고 뒤에 가서 칭찬하고, 단결을 위한 행동이라고 한다면 동네 조폭과 다를 바 없다. 그렇게 사생결단으로 대거리를 하더니 아무 상황 변화가 없는데 그냥 국감을 시작하잔다. 사실 이렇게 마무리될 줄은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있었다. 늘 그랬듯이 허상을 만들거나 대상을 왜곡시켜 놓고 무차별 비판하는 이른바 의도적인 ‘허수아비 때리기’ 전략이다. 오로지 지지층의 쾌감과 결집을 위해서다. 참 책임 없는 정치다.
국방부가 지난주 사드 배치를 성주 롯데골프장으로 번복 결정했다. 당초 3NO(요청, 협의, 결정 없음)를 외치다 느닷없이 성산포대를 결정했던 과정의 무책임은 지나간 일이니 논외로 치자. 이후 머리띠 싸맨 비이성적 주장과 대통령 말 한마디에 두 달여 만에 최적 장소가 바뀐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근거 없는 주장에 같이 머리띠 싸매고 님비만 외친 국회의원들에게 국가안보나 전략에 대한 책임성은 있는가. 그러니 서울 동작구의 기상관측레이더 설치도 전자파를 이유로 주민들이 결사반대하고 구청장도 가세한다. 무책임의 연속이다.
천하보다 귀하다는 목숨을 잃었다는 점에서 백남기 농부의 죽음은 더할 나위 없이 아프다. 이 사안이 정국 최대 쟁점이 된 것은 책임성 부재 때문이다. 정부와 경찰의 대응 방식이나 시위꾼들의 불법 시위에 대한 책임을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따지기보다 서로 무책임하게 책임 떠넘기기에만 치중한 결과다. 정부가 초반에 상식적으로 대응했으면 이렇게 커지지는 않았다. 그랬다면 불법 시위꾼들에 대한 처리도 쉬웠을 것이다.
800억원 가까운 돈을 단기간에 대기업으로부터 모으고 하루 만에 설립 절차를 마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사례는 또 뭔가. 전경련은 치밀한 검토와 준비를 거쳤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해명했는데, 며칠도 안돼 구조·비용이 비효율적이어서 9개월 만에 해산한다고 하니 황당할 따름이다. 이런 예사롭지 못한 일이 벌어졌는데도 책임 있게 합리적으로 설명해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대기업 노조 파업 무책임성은 말할라치면 입만 아프다. 남이야, 경제야, 하청업체야 어찌되든 상관없다. 위든 아래든, 여기든 저기든 책임성이 없다보니 불신만 생긴다. 그러니 김해신공항 같은 국책사업 결정도 외국인 손에 맡겨야 한다. 문제를 피해가고, 덮고 가는 것은 선수가 됐는데 문제나 갈등을 푸는 능력은 젬병인 사회가 돼버렸다.
정치나 사회가 좀 더 냉정해져야 한다. 책임도 묻고, 책임도 져야 한다. 처벌에 중점을 두자는 게 아니다. 합리적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자 절차다. 지금 한국 정치는 ‘침묵의 무책임 카르텔’이 형성돼 있다. 상대방 책임을 물으면 우리 책임도 드러날 터이니 적당히 끝내는 것이 최고의 생존전략이 됐다. 무책임 카르텔은 정치 경제 사회 곳곳에 있다. 진보든 보수든 기득권층은 이를 조용히 향유하고 있다. 이것을 깨고 합리와 상식을 찾아가는 게 이리도 힘든가.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mhkim@kmib.co.kr
[김명호 칼럼] 책임 좀 지고 삽시다
입력 2016-10-04 17: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