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혈비용이 ‘유상’이라는 사실을 알고 분노하는 헌혈자들을 간혹 본다. 천금 같은 신체 일부인 혈액을 ‘무상’으로 기부했는데 어떻게 환자에게 ‘유상’으로 판매해 수익을 얻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생수 회사가 땅속에서 원료인 지하수를 공짜로 끌어 올려 만든 생수를 검사, 포장, 운송 등의 과정을 거쳐 편의점에서 최종 판매하는 과정을 생각해 보면 수혈 시 혈액이 ‘유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쉽게 이해된다.
헌혈자가 수혈의 원료인 혈액을 무상으로 기부하지만 헌혈의집이나 헌혈카페에서 채혈하고, 이것을 검사센터에 운반해 검사한 후 검사를 통과한 혈액을 수혈이 필요한 병원에 공급하는 일련의 과정에 비용이 투입되고 이것이 수혈비용으로 책정된다. 헌혈자들이 기부한 혈액 관련 비용이 이 수혈비용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대한적십자사 혈액원이나 한마음혈액원이 헌혈자에게 무상으로 혈액을 받아 수익을 챙긴다는 것은 잘못된 상식이다.
우리나라 국민은 누구나 ‘전국민 건강보험제도’의 혜택을 받는다. 따라서 환자가 병원에서 사고나 질병으로 수혈을 받았을 때 수혈비용 전부를 내는 것은 아니다. 입원 시 일반 환자는 수혈비용의 20%를 내지만 암환자는 중증질환 산정특례제도로 인해 5%만 부담한다.
예를 들면, 병원에서 환자가 많이 수혈 받는 농축적혈구의 혈액수가는 현재 400㎖당 4만8260원이다. 그러나 입원 환자가 실제 지불하는 수혈비용은 이 금액의 20%인 9652원이고, 암환자는 이보다 낮아 5%인 2413원이다. 이 정도 비용이면 환자가 헌혈증서를 구하기 위해 친척, 지인 등에게 부탁하러 다니는 수고를 하기 보다는 수혈비용을 그냥 지불하는 편이 훨씬 편리하고 비용 효과적이다.
이렇다 보니 헌혈증서를 병원에 제출해 수혈비용을 면제받는 환자들의 수가 급감하고 있다. 2004년 28.2%, 2005년 20.3%였던 헌혈증서 환부율이 2011년 14.7%, 2012년 13.1%, 2013년 12.0%, 2014년 10.2%로 해마다 줄어들었고, 2015년에는 10.4%였다.
이와 같이 헌혈증서 환부율이 줄어들면 헌혈 1회 시마다 수혈비용 등의 보상을 위해 2500원씩을 헌혈환부예치금 명목의 혈액수가로 적립해 마련되는 헌혈환부적립금은 반비례해 늘어난다. 매년 20∼30억원이 수혈비용 등으로 헌혈환부적립금에서 환부되고 있지만 매년 70∼80억원이 적립되는 점을 고려하면 매년 약 50억원의 헌혈환부적립금이 쌓이고 있는 것이다. 2016년 6월 기준으로 적립된 헌혈환부적립금은 약 325억원에 이른다. 은행 금고에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는 헌혈환부적립금은 당연히 국민이 내는 건강보험료에서 충당된다.
그렇다면 왜 연간 약 50억원의 건강보험 재정이 헌혈환부적립금으로 불필요하게 적립되고 있는 것일까? 이는 정부가 수혈비용 보상 관련 수요예측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황에서 불필요하게 혈액수가 인상을 2005년 2월과 2007년 3월에 두 번이나 했고, 암환자 산정특례제도 등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로 환자의 수혈비용 부담 감소와 헌혈증서 환부율 또한 감소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가 운영 중인 국가 혈액관리사업 최고 심의기구인 ‘혈액관리위원회’에서 2011년부터 시민사회에서 추천된 위원들이 불필요한 과다 헌혈환부적립금 문제 해소를 위해 2500원인 헌혈환부예치금 명목의 혈액수가를 인하하라고 요구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헌혈환부적립금이 창고에 가득 쌓여 있다 보니 정부나 대한적십자사 혈액원, 한마음혈액원은 수혈비용 보상이 핵심인 헌혈환부적립금의 용도를 혈액관리법 제15조 제3항과 혈액관리법시행령 제8조에 규정되어 있는 혈액관리와 관련한 연구, 혈액원 전산관리업무의 전산화 지원 등 다른 용도로 이미 사용하였거나 사용할 움직임이 있다.
매년 약 50억원의 건강보험 재정이 환자를 위해 사용되지 않고 은행 창고에 쌓여만 간다면 이는 중대한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보건복지부 담당부서인 생명윤리정책과에서는 헌혈환부적립금의 재원이 되고 있는 헌혈환부예치금 명목의 혈액수가를 신속히 인하하는 등의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또한 국회는 정부나 대한적십자사 혈액원, 한마음혈액원이 수혈비용 보상 이외 다른 용도로 함부로 헌혈환부적립금을 사용하지 않도록 철저히 감시하고 검증해야 한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 연합회 대표
[안기종의 환자 샤우팅] 혈액수가 인하로 헌혈환부적립금 줄이자
입력 2016-10-05 1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