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나이에 결혼해서 아이 한 명을 낳은 제자가 늦은 밤 전화를 걸어왔다. 이런저런 사정이 생겨 전공과는 무관한 호텔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인데, 노동 강도가 상당한 모양이었다. 24시간 꼬박 근무한 뒤 하루 쉬고 다시 같은 패턴으로 출근하는 근로조건이었다.
제자는 좀 취한 상태로 전화를 했는데, 사정을 들어보니 저녁식사 도중 아내와 말다툼을 한 눈치였다. 왜 싸우고 그래, 좀 져주고 그래야지. 농담처럼 웃으면서 제자의 말을 받았더니, 휴대전화 저편에서 아무 말 없이 한동안 깊은 숨을 내쉬는 소리만 들려왔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뭐 아내한테 좀 져주라는 말이 그렇게 심한 말인가, 나는 머릿속으로 계속 내가 내뱉은 말들을 복기했다. 그는 한참 동안 울더니 여전히 울음기 섞인 목소리로 간신히 이렇게 얘기했다. “저는 제가 미워서 견딜 수가 없어요.”
제자의 사정인즉슨, 자신이 아이한테 자주 ‘욱’ 하고 화를 낸다는 것이었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남자아이인데, 처음엔 남들 앞에서 버릇없이 굴 때마다 큰소리로 야단을 치던 것이 요즈음 들어선 사소한 행동 하나, 잘못 하나까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게 되었다고 했다. 그것 때문에 아내와도 말다툼이 잦아졌는데 그러지 말자, 좋은 말로 하자 결심했다가도 어느새 다시 ‘욱’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이었다. 제 자존감이 너무 낮아진 것 같아요. 제자는 그런 말도 덧붙였다.
그의 말 때문만이 아니라 때때로 나는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가 ‘욱’ 하면서 화를 내던 모습을 떠올릴 때가 많았다. 그때 어머니는 우리 형제가 밥상머리에서 밥을 제대로 먹지 않고 깨작대거나, 새로 갈아입힌 바지에 흙탕물을 묻히고 들어오면 그때마다 욱욱, 동네가 떠나가라 야단을 치곤 했다. 사실 그건 우리 어머니의 문제만도 아니었다. 동네 어머니들이 대부분 ‘한 욱’ 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때문에 동네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시간이 흘러 내가 세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 입장이 되어 어머니에게 넌지시 여쭤본 적이 있다. 어린 시절엔 어머니가 무서워서 혼났다고, 왜 그렇게 자주 화를 내셨느냐고. 그러자 어머니에게선 이런 답이 돌아왔다. 한겨울에 개천에 나가 겨우 손빨래해서 입혀놓았는데 그걸 한순간에 더럽혀놓으니 나도 모르게 화가 안 나더냐, 망설이다가 외상으로 고기를 끊어와 국을 끓여놓았는데 그걸 제대로 먹지 않으니 부아가 치밀지 않더냐.
본래 ‘욱’의 사전적 정의는 이러하다. 격한 감정이 불끈 일어나는 모양. 그런 정의 때문인지 몰라도 ‘욱’은 한 개인의 성격상 단점으로 생각될 때가 많다. 그래서 자주 ‘욱’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탓하고, 자신의 자존감을 원망하게 된다. 하지만 그 옛날 어머니가 아무 거리낌 없이 자식들에게 고깃국을 끓여줄 수 있었다면, 세탁기가 손쉽게 건조까지 해줄 수 있었다면 과연 그렇게 자주 자식들에게 화를 냈을까?
신자유주의 시대는 많은 것들을 개인의 잘못으로만 돌리는 단어를 더욱 더 번창하게 만드는 재주를 지니고 있다. 분노조절장애니 굴욕이니 하는 말들 또한 같은 차원에서 빈번히 유통되고 있다. 그렇게 해서 시스템과 구조적 모순을 감추어 버린다. 나는 여유 있는 사람들이 호텔 뷔페 같은 곳에서 제 자식에게 화를 내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자식에게 자주 화를 내는 것도 대부분 가난한 가장들의 몫이다. 나는 울면서 전화한 제자에게 별다른 말을 해주지 못했다. 그저 그의 다음 날 출근이 걱정되어 일찍 자라고 말했을 뿐.
이기호 (광주대 교수·소설가)
[청사초롱-이기호] ‘욱’의 번창
입력 2016-10-04 1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