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90> 시대극 유감

입력 2016-10-04 17:31
‘이집트의 신들’ 포스터

고대 이집트 신화를 그린 ‘이집트의 신들(알렉스 프로야스, 2016)’을 봤다. 그러나 영락없는 슈퍼히어로 영화였다. 암흑의 신 세트가 형인 광명의 신 오시리스를 살해(신인데도 죽는다)하고 권좌를 찬탈하자 오시리스의 아들 호루스가 세트에게 복수한다는 신화가 주 내용인데 세트고 호루스고 전지전능한 신이라기보다는 딱 요즘 쏟아져 나오는 X맨 같은 돌연변이 슈퍼히어로 모습이다. 이 영화뿐이랴. 얼마 전에 개봉한 ‘타잔의 전설(데이빗 예이츠, 2016)’에 나온 타잔은 트레이드마크인 가죽 가리개 대신 쫄쫄이 같은 바지를 입은 모습이 그대로 ‘헐크’요, 넝쿨줄기를 타고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모습은 고스란히 ‘스파이더맨’이었다.

시대극 영화들이 대부분 판타지 아니면 슈퍼히어로물의 복사판처럼 된 데 한숨 짓다보니 역사적 사실을 다뤘든 픽션이든 현실적이었던 옛날 사극영화들이 그리워졌다.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한 ‘파라오의 나라(1955)’. 윌리엄 포크너가 공동각본가로 참여하고 하워드 호크스가 연출한 이 쿠푸왕 이야기는 엄청난 인력을 동원(엑스트라 1만명)해 고대 이집트의 스펙터클한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다. 테르모필레전투라는 역사적 사실을 영화화한 ‘300(잭 스나이더, 2006)’의 할아버지격인 ‘300명의 스파르타인(300 Spartans, 루돌프 마테, 1962)’은 어떤가. 만화가 원작인 ‘300’에 나온 식스팩 복근 투성이의 스파르타 전사들과 그로테스크한 모습의 크세르크세스대제는 그야말로 만화에서 튀어나온 인물이지 현실 속 인물일 수 없다. 반면 1962년판은 마치 황산벌의 계백장군 이야기를 보는 듯하다.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나 슈퍼히어로 영화들이 흥행에 성공한 탓에 거의 모든 시대극이 그 아류처럼 만들어지는 것은 유감스럽다. ‘스파르타쿠스(스탠리 큐브릭,1960)’ ‘4계절의 사나이(프레드 진네만, 1966)’ ‘삼총사(조지 시드니, 1948)’ 같은 진지하면서도 재미있는 현실적, 사실적인 시대극이 보고 싶다.

김상온(프리랜서 영화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