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 종식과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를 위한 최종 협상을 지지하는가?”
52년간 22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내전, 이를 끝내기 위한 마지막 질문을 받아든 콜롬비아 국민들의 대답은 “아니요”였다. 콜롬비아 정부와 반군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의 평화협정을 비준키 위한 국민투표가 부결됐다. 3년9개월에 걸친 지난한 협상과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체결한 평화협정이 수포로 돌아간 것은 물론, 겨우 싹을 틔운 평화도 안갯속에 잠겼다.
3일(현지시간) 콜롬비아 선거관리위원회는 평화협정의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가 찬성 49.78%, 반대 50.22%로 부결됐다고 밝혔다. 콜롬비아 정부와 FARC는 2012년 11월 협상을 개시하고 내전 종식을 논의했다. 지난 7월 쌍방 정전에 합의한 데 이어 8월 평화협정문을 발표했다. 지난달 26일 역사적인 평화협정 서명식을 치렀다. 국민투표를 통한 비준만 남겨둔 상황이었다. 수차례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 가결은 무난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실제로는 반대표가 5만7000표 더 많았다. 투표율도 37%로 낮았다.
부결된 국민투표는 내전이 남긴 생채기를 여실히 드러낸다. 허리케인 ‘매슈’가 찬성 여론이 강한 북부 해안지대를 강타한 점도 부결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다. 남미 최후의 반군 FARC는 1964년 창설 이후 정권 전복과 기득권 타파를 기치로 내걸고 무장투쟁을 벌였다. 활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납치, 강도를 일삼고 마약 제조와 유통에 손대면서 비판에 직면했다. FARC를 테러리스트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FARC의 활동이 왕성했던 곳일수록 반대표 비율이 높았던 점은 반군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국민투표를 앞두고 평화협정이 너무 ‘관대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평화협정은 전쟁 범죄를 자수한 FARC 조직원의 경우 실형을 면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세금을 투입해 7000여명에 이르는 FARC 게릴라의 사회 재정착을 지원하는 점도 불만의 원인이다. 정당 형태로 재출범, 의회에 입성할 계획인 FARC에 대한 불신도 깊다.
이 같은 점을 문제 삼아 알바로 우리베 전 대통령 등 평화협정 반대파가 좀 더 강경한 재협상을 주장하고 있다고 영국 BBC방송은 전했다.
후안 마누엘 산토스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에서 “평화협정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호소했지만 과반의 반대표가 나왔다”며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평화를 위해 계속 투쟁하겠다”고 강조했다. 로드리고 론도뇨 FARC 지도자 역시 평화를 향한 의지를 나타냈다. 쿠바 아바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FARC는 안정적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며 “평화가 승리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당장 내전이 다시 불붙을 것으로 전망되지는 않는다. 아직 재협상의 문은 열려 있다. 그러나 이번 국민투표로 정당성과 원동력을 상실한 평화협정은 사실상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내전이 재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신훈 기자 zorba@kmib.co.kr
콜롬비아의 52년 내전 종식, 최후 관문서 좌절되나
입력 2016-10-03 1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