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경남 함안군 칠원읍 손양원목사기념관 앞마당에 복원된 손 목사의 생가에서 만난 기도문이다. 150㎝ 높이로 나란히 배치된 ‘손양원 목사의 9가지 기도문’ 팻말 중 일곱 번째 팻말로 여순사건으로 두 아들을 잃은 후 장례식장에서 드린 감사기도의 내용을 담고 있다.
‘원수’와 ‘사랑’.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그러나 성경은 “원수를 사랑하라”(마 5:44)고 말씀한다. 성부(聖父) 하나님도 2000년 전 이런 기도를 드리셨을까. 성자(聖子) 예수를 무참히 처형한 사람들을 양자 삼은 하나님. 그를 닮은 손양원 목사가 오버랩됐다.
2일 방문한 손양원목사기념관은 확 트인 대지에 자리 잡고 있었다. 기념관 건너편엔 칠원교회가 마주하고 있다. 칠원교회는 손 목사의 부친 손종일 장로가 다녔던 교회다.
기념관 안으로 들어서면 ‘사랑의 원자탄’으로 불렸던 손 목사의 삶을 확인할 수 있다. 1층에 전시된 그림 ‘애양원 14호실’과 ‘하늘문이 열리고’는 전남 여수 애양원에서 목회하며 한센인에게 지극 정성의 사랑을 쏟았던 손 목사의 삶을 보여준다.
기념관장 안경선 목사는 “애양원 14호실은 한센인 중에서도 상태가 심한 사람들이 모여 있던 방이었다. 바닥엔 피고름이 흥건해 발조차 디딜 수 없었다”며 “손 목사는 그곳에 들어가 환자들의 환부를 입으로 빨아냈고 복음으로 위로했다”고 말했다.
기념관에는 손 목사와 두 아들의 죽음을 기억하기 위해 삼부자(三父子)의 관(棺) 모형과 사진, 김구 선생과의 면담 조형물, 신사참배 거부로 투옥된 청주교도소 독방 모형, 가족들에게 보낸 육필 서신 등을 볼 수 있다. 영상실에서는 손 목사의 생애를 다룬 영화, ‘그 사람 그 사랑 그 세상’을 15분으로 압축해 상영한다.
이곳은 경남 창원시 ‘성지순례길 탐방코스’의 종점이다. 창원시는 지난 6월 진해구 웅천동 ‘주기철 목사 기념관’을 시작으로 웅천초등학교∼웅천교회∼경남선교120주년기념관∼마산문창교회∼손양원목사기념관·생가를 돌아보는 62.5㎞의 코스를 공개했다.
중간지점인 경남선교120주년기념관은 이곳에서 남쪽으로 25㎞를 달리면 나온다. 창원시 진동면 창원공원묘원 안에 조성돼 있는 기념관에는 부산과 경남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호주선교사 126명의 사진과 유품이 보관돼 있다. 기념관 뒤편엔 주기철 손양원 최상림 목사, 이현속 전도사, 조용석 장로 등 경남이 배출한 순교자 기념비와 호주 선교사 8명의 순직기념비 등 묘원으로 구성돼 있다.
경남성시화운동본부 이종승 대표회장은 “내년에는 기념관 앞에 기념교회도 세워진다”며 “기념관에서는 경남이 배출한 주기철 손양원 목사의 삶과 신앙을 기리고, 선교사들의 한국 사랑을 직접 만날 수 있다”고 전했다.
성지순례길 탐방코스의 출발지인 주기철목사기념관은 경남선교120주년기념관에서 동쪽으로 31㎞ 거리에 있다. 3일 찾은 이곳에는 주 목사의 ‘일사각오’ 신앙과 독립운동 당시의 현장 모습, 건국훈장과 친필편지, 서명, 교회기록 등이 전시돼 있다. 1930년 부산 초량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던 시절 직원회록(제직회록)도 전시돼 있다. 주 목사는 당시 세계적 경제공황의 여파로 교회 재정이 어려워지자 자신의 봉급을 70원에서 60원으로 낮추자고 제안했다. 교회 제직들은 반대했으나 결국 시행됐다.
기념관 2층 벽면에는 국내 순교자들의 사진과 이름이 지역별로 전시돼 있다. 손양원 목사 옆에 주 목사와 장남 주영진 전도사가 나란히 배치돼 있다. 2007년 아프간 피랍에서 순교한 배형규 목사 사진도 눈에 띈다. 주 목사가 기도했다는 무학산 십자바위 모형 전시실도 둘러볼 만하다. 편편하면서 한쪽으로 약간 기울어진 바위가 십자가 모양으로 갈라져 있어 십자바위라고 불리는데 1931년 주 목사가 마산문창교회에서 목회할 때 자주 찾았던 곳이다. 1940년 평양 산정현교회 목사직에서 파면당한 계기가 됐던 ‘다섯 종목의 나의 기도’를 찬찬히 읽어도 좋다. 네 번째 기도인 ‘의에 살고 의에 죽게 하소서’는 나약한 신앙을 다잡아준다.
기념관장 김관수 장로는 “주 목사님의 삶을 통해 부끄러운 우리의 신앙 현실을 돌아보게 된다”며 “죽음으로 신앙을 지켰던 그의 신앙과 나라사랑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창원=글·사진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그래픽=이영은 기자
사랑·죽음으로 신앙 지킨 믿음의 선조들을 만나는 길
입력 2016-10-03 2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