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안받으려다… 헝가리의 617억짜리 국민투표 ‘자충수’

입력 2016-10-03 18:17 수정 2016-10-03 21:34
헝가리의 여성 유권자가 2일(현지시간) 난민 수용 여부를 결정하는 국민투표에 참여한 뒤 기표소를 나서고 있다. AP뉴시스

헝가리에서 2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이 국가별로 할당한 난민 쿼터를 수용할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국민투표가 실시됐지만 투표율이 낮아 무효화됐다. 1294명의 난민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617억원을 들여 투표를 실시했는데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헝가리는 난민을 거부할 명분을 잃어버린 반면, EU는 난민 할당 정책에 큰 힘을 얻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AP통신과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이날 실시된 국민투표의 전체 투표율은 43.9%에 그쳤다. 특히 민심의 바로미터 역할을 해온 수도 부다페스트의 투표율은 39.4%에 불과했다. 827만 유권자 가운데 50% 이상이 투표해야 하기에 투표 자체가 무효화됐다. 이마저도 4% 가까이는 무효표로 나와 유효표는 40.1%에 머물렀다. 투표 참여를 거부한 유권자들은 EU 및 EU를 주도하는 독일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해 기권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개표 결과 98.3%가 정부의 난민 거부에 대해 지지를 나타냈다. 난민을 거부하는 이들을 중심으로 투표가 이뤄진 것이다. 이에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사실상 우리가 승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AP통신은 “오르반 총리가 ‘완벽한 패배’를 면했을 뿐 투표 결과는 현 정권의 명백한 패배이고 정치적으로도 큰 부담을 안게 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오르반 총리와 여당은 투표 독려 캠페인에 5000만 유로(616억9000만원)를 쓴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난민 쿼터를 수용하자는 쪽에서는 캠페인을 거의 벌이지 않았다. 때문에 오르반 총리의 사퇴론도 나오고 있다.

EU는 지난해 9월 난민 16만명을 28개 회원국에 할당했다. 이에 난민 1294명을 할당받은 헝가리를 비롯해 폴란드, 체코 등 가난한 동유럽 국가들이 “난민들은 잘사는 서유럽에 가려고 오는 것인데 왜 우리가 난민을 수용해야 하느냐”고 반발했고, 헝가리의 경우 국민투표까지 하게 됐다.

EU는 지난 6월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국민투표가 통과된 이후 회원국 간 분열이 심화되던 상황이었다. 이런 때 헝가리 국민들이 EU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EU의 결속력이 한층 강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