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 던진 거장… 관객 낚을까

입력 2016-10-04 20:55
꼬일 대로 꼬인 남북 관계에 초점을 맞춘 신작 ‘그물’을 6일 개봉하는 김기덕 감독. 머리를 위로 묶어 한결 부드러워진 그의 이미지처럼 기존 영화에서 보여주던 특유의 섬뜩한 장면 없이 연출했다. NEW 제공
김기덕(56) 감독이 남북 관계를 다룬 ‘그물’(6일 개봉)로 돌아왔다. 김 감독의 22번째 작품인 ‘그물’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도 그렇지만 관객들을 불편하게 하는 특유의 섬뜩한 장면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새롭다. ‘피에타’(2012)로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거장 감독의 여유에서 비롯된 것일까.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만난 김 감독은 머리를 위로 묶은 모습이었다. “여자들이 좋아할까 봐서 헤어스타일을 이렇게 했는데 괜찮아 보여요? 허허. 혼자 조용히 작업하다 7년 만에 인터뷰를 하는데 제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온 건 아닐 테고 영화는 어떻게 봤어요?”

그는 부드러운 이미지로 농담을 꺼냈다. 젊은 시절 언론에 적대감을 드러내곤 했던 그가 아니던가. 세계적인 감독으로서의 위상을 높여가고 나이를 먹으면서 그런 것들을 초월한 것일까. 이번 신작은 변화된 그의 생각이 잔뜩 묻어나는 작품이다.

‘그물’은 북한 어부 철우(류승범)가 발동기 고장으로 남한에 표류해 겪는 일을 그렸다. 철우는 남한에서 간첩 혐의로 조사받고 귀순을 강요받기도 한다. 우여곡절 끝에 북한으로 돌아가지만 남한에서의 행동 때문에 사상을 의심받다가 결국 비극으로 치닫게 된다.

이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분단 66년째인데 남북 관계는 진전된 게 없잖아요. 매번 시비를 거고 핑계를 대면서 대화가 중단되고 비틀어지고 참 답답한 거죠. 그런 상황 자체가 잔인하고 섬뜩한데 굳이 그런 장면을 넣을 필요가 없는 거죠.”

영화는 올해 베니스영화제와 토론토영화제에 초청돼 호평 받았다. “베니스에서 여성 관객이 하염없이 울더군요. 주인공이 남북 양쪽에 당하는 상황이 너무 슬펐다는 겁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시대를 사는 비극이라고나 할까요.”

1억5000만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는 10일간 촬영했다. 저예산으로 짧은 기간에 촬영을 끝내는 건 김 감독의 전매특허나 다름없다. “‘실제상황’(2000)이라는 작품은 3시간 만에 촬영했는데 열흘이면 족하죠. 다만 돈이 없으니 북한 장면의 세트가 조금은 조잡해 보일 텐데 할 수 없죠 뭐.”

철우 역을 맡은 류승범, 남한 조사관 역의 김영민, 철우를 경호하는 오진우 역의 이원근 등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나다. “류승범은 지난해 부산영화제 때 얘기하고 캐스팅했는데 연기가 아니라 실제 철우처럼 실감 나게 혼신을 다해주어 고맙죠. 김영민은 오랫동안 같이 작업해서 눈빛만 봐도 서로 원하는 걸 알고요.”

장동건이 주연배우로 나온 ‘해안선’(2002), 일본 배우 오다기리 조와 이나영이 출연한 ‘비몽’(2008) 등 스타들을 내세운 영화도 있지만 ‘그물’은 대중성에 특히 초점을 맞췄다. 김 감독의 작품으로는 드물게 ‘15세 관람가’ 등급이 나온 것도 고무적이다.

“한반도는 강대국들의 군사적 이익 관계 속에서 언제든 그들의 대리전쟁터가 될 수도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이데올로기의 그물에 걸려 죽어가는 물고기는 아닌지, 청소년들도 이 영화를 통해 슬픈 현실을 이해하고 자신들의 미래를 지킬 수 있는 고민을 해볼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는 “더 이상 어느 편이냐는 어리석은 질문을 하지 말고 진심으로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으로 마주서길 바란다”는 교훈적이고 의미심장한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확실히 달라지긴 달라진 김기덕 감독이었다.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