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기록 숨긴 정권들, 받은 기록은 악용”

입력 2016-10-04 18:39 수정 2016-10-06 20:05
대통령기록이라는 측면에서 노무현정부와 이명박·박근혜정부를 평가한 전진한 알권리연구소 소장. 전 소장은 역사에 남겨야 할 대통령기록이 정쟁에 이용되거나 제대로 기록되지 않는 현실을 비판한다. 한티재 제공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기록물법’을 제정해 재임 중 기록을 보관토록 하면서부터 우리나라는 ‘대통령기록’을 갖게 됐다. 그 이전까지는 대통령이 재임 중 남긴 메모, 서신, 회의록, 보고서 등 대통령기록이 존재하지 않았다. 역대 대통령들은 청와대를 떠나면서 관련 기록들을 불살라버리거나 사저로 들고 갔다. 지금도 경매시장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원고가 거래된다거나,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전두환 정권의 국보위에 참여해서 어떤 발언과 역할을 했는지 확인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전진한(42) 알권리연구소 소장의 책 ‘대통령 기록전쟁’(한티재)은 이명박·박근혜정부 시절 대통령기록이 또 다시 위기에 처했음을 고발한다. 그는 2002년부터 참여연대 정보공개사업단,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등에서 활동해온 기록전문가다.

전 소장은 지난 1일 인터뷰에서 “이 대통령은 재임시절 기록을 전부 대통령기록으로 지정했다. 비밀기록이 0건이다”라며 이 대통령이 대통령지정기록을 악용했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지정기록은 15년 후 공개되는 기록이고, 비밀기록은 공직자들이 볼 수 있는 기록이다. 그런데 자신의 모든 기록을 대통령기록으로 묶어버렸기 때문에 후임 정부에서는 이명박정부에서 진행된 일을 하나도 알 수가 없다.”

역대 정부 중 비밀기록을 한 건도 남겨놓지 않은 경우는 없었다. 공무원들은 전임 정부에서 일어난 일을 보고 참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무현정부는 비밀기록 9800건, 대통령지정기록 33만건을 남겼다.

전 소장은 “이명박정부가 비밀기록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외교문제를 다루거나 재난사태에 대처할 때 박근혜정부가 참고할 기록이 없는 셈”이라며 “큰 일이 터질 때마다 현 정부가 우왕좌왕하는 이유 중 하나가 거기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퇴임 뒤 회고록을 출간해 공개해서는 안 되는 비밀들을 공개하기도 했다. 전 소장은 “이 대통령 회고록을 보니 비밀정보가 수십 건 나온다. 원자바오 당시 중국 총리의 발언이 통째로 인용된 곳도 있다”며 “외교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대통령기록 문제는 박근혜정부에서도 심각하다. 전 소장은 “대우조선해양 문제를 다루기 위해 청와대 서별관회의를 했는데 회의록을 안 남겼다고 한다. 유일호 총리가 청문회에서 그렇게 답변했다”면서 “4조2000억원이나 들어가는 결정을 하면서 회의록 하나 안 남긴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월호 참사가 터졌을 때도 대통령이 어떻게 대처했는지 아무런 기록이 없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구두로 지시했다고 하고, 구두지시라서 기록을 안 했다고 하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대통령실에서는 ‘말씀기록’이라고 해서 대통령의 기침소리까지 다 기록하게 돼 있다.”

그는 또 보수정권 들어 청와대의 정보공개 비율이 급격히 하락했다는 점을 짚으며, “맨날 유언비어 퍼트리면 처벌하겠다고 하는데, 유언비어를 없애려면 정보공개가 먼저 돼야 한다. 광우병, 천안함, 메르스, 세월호 등 국민들 관심이 집중된 사건들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공개하지 않으면서 무슨 유언비어 타령이냐”고 비판했다.

그가 책을 쓰기로 결심한 이유는 2013년의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명박정부는 노 대통령이 남겨둔 기록을 고스란히 참여정부 공격에 사용했다. 박근혜정부도 남북정상의 대화록을 공개했다. 대통령기록은 국가를 위한 엄청난 자산인데, 대통령기록을 그렇게 공개하고 악용하면 누가 기록을 남기려고 하겠느냐.”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