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최근 사법시험 폐지가 합헌이라고 최종 결정해 금수저·흙수저 논란과 시험의 공정성 시비에 일단 종지부를 찍었다. 이번 판결은 ‘고시낭인(考試浪人)’을 양산하며 치른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데도 어느 정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어느 정도라고 표현한 것은 이들 고시낭인이 아직도 존치돼 있는 행정고시로 몰릴 수 있는 풍선효과 때문이다.
주말연속극 ‘우리 갑순이’를 보면 공시족 역시 고시낭인 못지않게, 어쩌면 더 심각하게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갑돌이는 취업이 어려워지자 서른이 넘도록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족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사귀어 온 여자친구 갑순이가 용돈이며 책값이며 마치 사시준비생 챙기듯 뒷바라지를 한다.
지난 3월치 청년실업률을 보자. 통계청은 3월 기준으로 역대 최고치인 11.8%라는 청년실업률을 발표하면서 공무원시험 접수가 있어 2∼3월은 연례적으로 실업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통계청 설명에는 공무원시험이 실업률 통계에 잡히기는 하지만 통상적인 통계에서는 이례적인 사안으로 치부하려는 듯한 인상이 풍긴다. 일반 기업체나 금융기관 등에 취업하려는 청년들과 공시족을 애써 구분하려는 이분법 말이다. 공무원시험에 연령 제한이 풀리면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공시족이 늘어나는 것은 사기업 취업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데다 고용형태마저 안정적이지 못한 데 기인한다. 결국 전체 실업 문제가 해결돼야 공시낭인의 병폐도 풀릴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실업대책을 보면 아까운 세금만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정부는 국회에 내년도 예산안을 제출하면서 일자리 창출 분야를 중점 투자분야라고 강조했다. 금액도 17조5000억원으로 지난해 15조8000억원보다 10.7%나 늘렸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심층평가 결과를 토대로 효율화도 병행한다고 했다. 그런데 정부가 언급한 KDI가 최근 일자리 사업의 효과가 떨어진다는 지적을 하고 나섰다.
윤희숙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지난달 26일 KDI 포커스에 실린 보고서에 “일자리 사업 지원은 당장의 취업자 수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로 인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업의 연명을 돕는 사례가 많다”고 비판했다. 특히 정부 주도 관행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데다 고도의 전문성과 현장 경험이 필요한 고용서비스 일선 센터장을 중앙부처 공무원이 독점하고 있는 구조도 문제로 지적했다. 일자리 창출보다 공무원들의 자리보전 수단이 되고 있다는 것인데 정부는 한술 더 떠 이런 자리를 내년에는 70개에서 100개로 늘리기로 했다.
일자리 늘리기 사업이 산으로 가고 있는 사례는 끝이 없다. 박윤수 KDI 연구원은 KDI 포커스를 통해 “OECD 회원국들은 고용장려금 예산 중 81.8%를 신규 일자리 창출을 지원하는 채용장려형 보조금에 할당하는 반면 한국의 고용보조금은 이 비율이 9.6%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충격적인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이런 형편이라면 차라리 17조원 넘는 예산으로 업체를 수천개 만들면 청년실업자 40여만명을 고용하고도 남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처럼 정부의 일자리 사업이 비효율로 치닫고 있는 것은 정책 담당자들이 책상머리에 앉아 페이퍼로만 주물럭거리기 때문이다. 일자리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각 분야의 사업 항목과 돈을 늘리고 빼고 하는 단순작업만 반복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가상현실(VR), 사물인터넷 등 새로운 산업 트렌드를 따라가기도 벅찬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공무원들이 일자리 창출에 좀 더 창조성을 발휘하길 바란다.
이동훈 경제부장 dhlee@kmib.co.kr
[돋을새김-이동훈] 밑 빠진 실업대책
입력 2016-10-03 1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