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국회의장은 국회 파행 1주일간 한 번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20대 국회 첫 정기회 개회사 파문으로 유감표명(9월 5일)한 지 19일 만에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통과 과정을 두고 새누리당이 또 다시 항의하자 단단히 마음을 먹은 것으로 보였다.
결국 새누리당은 2일 소속 의원의 국정감사 복귀 및 이정현 대표의 단식 중단을 밝혔다. 20대 국회가 출범하자마자 벌어진 새누리당과의 격렬한 충돌에서 정 의장은 무엇을 얻고, 잃었을까.
새누리당이 야권이 아닌 정 의장을 상대로 날을 세운 것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심판’에 대한 기선제압 성격이 강하다. 법인세 인상을 담은 세법개정안을 필두로 앞으로 쏟아질 야권의 대선용 법안과 내년 예산심사 등을 앞두고 벌어진 전초전 격이다.
이 과정에서 새누리당은 정 의장을 상대로 연일 폭로전을 벌였다. 정 의장 측은 이를 흠집내기로 보고 강경 자세로 돌아섰다. 정 의장 측 관계자는 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의회의 권위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총선 민심으로 만들어진 여소야대 국회가 청와대·새누리당 공조 아래 무력화돼선 안 된다고 봤다는 뜻이다.
단식 중인 새누리당 이 대표를 찾아가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주변에 “개인 정세균이었다면 100번도 더 찾아가 손을 잡았겠지만 의장이라 그럴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의장 측은 “새누리당의 공세는 이른바 ‘떼법’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원칙을 지켰다”고 말했다. 대체로 큰 줄기를 관철시켰다는 평가를 내린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정 의장이 잃은 부분도 적지 않다. 우선 스스로 새누리당이 오해할 만한 발언들로 빌미를 줬다. 가뜩이나 야권의 세에 밀리는 새누리당으로선 민감하게 여길 만했지만 지나치게 경색된 태도를 고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달 24일 새벽 해임건의안 통과 직후 26일 이 대표가 단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정치력을 발휘했다면 이처럼 막다른 길까지 치닫지는 않았을 것이란 지적이 적지 않다. 김준석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본회의 도중 논란이 된 (맨입) 발언 등에 대해선 명쾌한 해명을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여야가 국회에서 첨예하게 대립할 때마다 정 의장의 운신의 폭이 좁아질 것이란 전망도 있다. 강경한 자세로 여당을 꺾은 것이 다음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어서다.
정 의장을 상대로 한 새누리당의 ‘과잉’ 폭로전은 국감에서 정권 비리 의혹이 쏟아지는 걸 막기 위한 의도적 도발이란 해석도 있었다. 이 덕분에 김 장관 해임건의안은 물론 여러 의혹들이 주목을 받지 못했다. 게다가 야권의 공격 카드는 ‘반쪽 국감’에서 대부분 공개돼 남은 국감 기간 여당의 방어도 훨씬 수월해졌다. 야권은 이를 막기 위해 정 의장과 새누리당 사이 여러 차례 중재에 나섰지만 모두 실패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의장 권위’ 지켰다지만 ‘운신의 폭’ 좁아졌다
입력 2016-10-03 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