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시행 첫 주말, 예식장 화환 확 줄고 골프장 예약 줄취소

입력 2016-10-03 00:02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이 대한민국의 주말 풍경과 접대문화를 바꿔놓고 있다. 지난달 28일 법 시행 후 첫 연휴(1∼3일)를 맞아 과거 우리 사회에서 보지 못했던 상황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주말 결혼식장과 장례식장 분위기가 달라졌다. 법 시행 이전 복도를 가득 메우던 화환 행렬은 더 이상 보기 어렵게 됐다. 2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결혼식장에는 축하 화환 3개만이 듬성듬성 놓여 있었다. 결혼식장 관계자는 “이번 주말부터 축하 화환이 눈에 뜨게 줄었다”며 “보내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서로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7만5000∼9만원 사이의 저가 화환이 인기를 끌고 있다. 업체들은 ‘김영란법 화환’이나 ‘김영란법에 안 걸리는 화환’이라고 광고를 하고 있다. 서울 강남 등에 위치한 주요 대형병원 장례식장 풍경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빈소마다 근조 화환들이 줄었고, 조문객들이 부의금 액수를 10만원 이하로 맞추려는 모습들도 목격됐다.

지역 축제도 모습을 바꿔가고 있다. 선물용 특산품 판매가 크게 줄었고, 초대 인사 규모나 접대도 확 줄었다. 지난달 30일부터 3일까지 진행되는 경북 봉화송이축제의 경우 선물용인 송이 1등품 판매보다는 2등품 이하를 구매하는 실수요자들이 늘었다. 김동룡 봉화부 군수는 “김영란법 효과가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부터 진행 중인 고양가을꽃축제에는 초청 인사가 대폭 축소됐다.

전국 주요 회원제 골프장은 직격탄을 맞았다. 법 시행 후 첫 주말에 적게는 10%, 많게는 50%까지 예약이 취소됐다. 경기도 용인의 한 회원제 골프장은 2일 “지난주 토요일 180팀을 받았지만 이번 주에는 100팀만 예약됐다”고 밝혔다. 수원의 또 다른 회원제 골프장도 지난주에 비해 10%가량 손님이 줄었다고 토로했다. 다만 대중(퍼블릭) 골프장 사정은 예전과 비슷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말 골프장의 주 고객이었던 기업 홍보맨들은 모처럼 한가로운 주말을 보냈다. 유통업계 한 홍보팀장은 “예전에는 주말이면 새벽 일찍 일어나 공무원, 출입기자 등과 운동(골프)을 나갔었는데 이번 연휴에는 늦잠을 자고 아내와 함께 영화도 보고 쇼핑도 하면서 여유롭게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임원진 등 기업인들이 맡고 있는 공공기관 이사, 위원회 위원들의 사퇴도 잇따르고 있다. 대기업 관계자는 “굳이 오해를 살 이유가 없어 정확한 해석이 나오기 전까지는 대외 활동을 줄이는 게 좋다는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2일까지 경찰청에 서면 접수된 신고는 3건에 불과했다. 112 신고는 지난달 30일까지 81건 접수됐다. 모두 출동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이거나 상담전화여서 서면신고를 안내하거나 정부민원안내 콜센터(110)로 연결했다고 경찰청은 밝혔다.

전문가들은 김영란법이 시행 과정에서 적지 않은 진통을 겪겠지만 한국사회의 ‘연줄문화’ 등에 질적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평가한다. 서울대 사회학과 김석호 교수는 “한국 시민사회에 부족한 공정성과 신뢰성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이어 “하나의 법이 모든 경우의 수를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에 예기치 않은 파급효과나 편법 등 각론적인 수준에서 문제가 일어날 수 있겠지만 그런 빈 부분들은 법을 시행해나가며 조정하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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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태원 모규엽 이가현 기자, 김혜림 선임기자, 봉화=김재산 기자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