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최대 은행 도이체방크가 세계 경제에 또다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제2의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확산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더 많기는 하지만 금융시장을 쥐락펴락하는 변수로 자리 잡았다. 존 크라이언 도이체방크 대표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직원들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은행의 신뢰에 흠집을 내려는 세력이 있다”고 음모론까지 제기했다.
지난주 도이체방크의 주가는 지옥까지 떨어졌다가 급반등했다. 미 법무부가 도이체방크에 부동산유동화증권(MBS) 위험성을 숨기고 팔았다는 혐의로 140억 달러(약 15조원)의 벌금을 부과했다는 소식 때문에 2주간 주가가 22%나 폭락했다. 도이체방크의 주가는 연초 대비 44% 내렸다. 다음 날 독일의 도이체방크 주가는 급반등했다. 독일 임원들이 미국으로 가서 벌금을 40억 달러 아래까지 낮추는 협상을 한다는 뉴스에 주가가 하루 만에 14%나 올랐다.
전 세계 금융시장이 함께 출렁거렸다. 한국에서도 연중 최고치까지 올랐던 코스피지수가 30일 1.21%나 내려갔다. 외국인과 기관이 주식을 팔았다. 금리도 흔들리고 있다. 미국의 금리 인상 움직임으로 반짝 상승세를 탔던 국내 국고채 금리가 30일 하루 만에 0.05% 포인트 내렸다.
도이체방크는 지난 2월에도 코코본드 우려로 유럽의 은행들을 벌벌 떨게 만들었다. 후순위 채권인 코코본드는 원금 상환 부담이 작은 반면 이자율이 높다. 도이체방크가 부실 경영 실태를 숨겼다는 이유로 수조원대 소송이 이어지자 코코본드 이자를 제대로 갚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급속히 확산됐다.
6월에도 국제통화기금(IMF)이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중요 은행 가운데 도이체방크가 가장 큰 시스템 리스크를 안고 있다”고 경고하면서 세계 금융산업이 불안에 빠졌다. 도이체방크의 경영난이 일시적인 게 아니라 유럽 재정위기와 저금리라는 구조적 요인 때문이란 지적이었다. 이런 구조적 문제가 중요한 요인이라면 도이체방크만이 아니라 독일과 유럽 전역의 은행들이 모두 위험에 빠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도이체방크 크라이언 대표는 서한에서 “저금리 상황에서도 올해 상반기 세전수익이 10억 유로에 이르고, 현금 2150억 유로를 보유하고 있다”며 “어떤 세력들이 자꾸 우리의 신뢰에 흠집을 내려 한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그는 “우리의 펀더멘털은 강하다”며 “우리 은행이 계속 의혹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직원들에게 촉구했다.
도이체방크가 유독 불안감 조성의 주범이 된 이유는 부실뿐만 아니라 부정한 경영 때문이다. 도이체방크는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곳곳에서 주가조작, 허위보고, 부실 숨기기 같은 일들로 주주들에게서 소송을 당하고 있다. 도이체방크에 막대한 벌금을 부과한 MBS 불완전판매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에서도 도이체방크의 자회사인 도이치증권이 2010년 코스피지수를 급락시킨 일이 들통나기도 했다.
USA투데이는 2일 “도이체방크 문제가 2008년의 리먼브러더스 사태처럼 글로벌 금융위기로 번지지는 않을 전망”이라고 전했다. 뉴욕의 투자회사 트렌드매크로의 돈 러스킨 대표는 “세계 금융 네트워크는 이제 2008년처럼 취약하지 않다”며 “만약 금융시장 일부에서 불행한 사태가 벌어진다고 해도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자신들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 잘 알고 있고 즉시 사태가 확산되는 것을 막을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글=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도이체방크 ‘벌금 쇼크’에 세계 금융시장 또 요동
입력 2016-10-03 0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