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病死)’로 표시된 백남기씨 사망진단서를 둘러싼 논란이 심화되고 있다. 서울대 의대 재학생들에 이어 동문들도 “심폐정지는 사망에 수반되는 현상으로 사인에 기재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서울대병원이 작성한 사망진단서가 통계청과 대한의사협회가 지난해 공동 발간한 ‘사망진단서 작성 안내 지침’에 위배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서울대 의대 동문 365명은 1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동문들이 후배들의 부름에 응답합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통해 “백씨 사망진단서는 통계청과 대한의사협회 원칙에 어긋난다”며 “외상의 합병증으로 질병이 발생해 사망하면 ‘외인사(外因死)’로 작성하도록 배웠다”고 비판했다. 서울대 의대생들이 지난달 30일 “직접사인으로 ‘심폐정지’를 쓰면 안 된다는 것은 국가고시 문제에도 출제될 정도로 기본적인 원칙”이라고 밝힌 데 대한 화답이다. 이 성명에는 지난 1일 오후까지 265명이 서명했다.
시위 도중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뒤 입원 300여일 만에 사망한 농민 백씨의 사망진단서를 보면 직접사인은 ‘심폐정지’, 그 원인이 되는 중간사인은 ‘급성신부전’, 중간사인에 영향을 끼친 선행사인은 ‘급성경막하출혈’이다. ‘사망의 원인(사인)’에 따라 ‘병사’ ‘외인사’ ‘불상’ 중 선택하게 돼 있는 ‘사망의 종류’ 항목은 ‘병사’로 표기됐다.
의협 지침에는 ‘사망의 종류는 선행사인(원사인) 기준으로 선택한다’고 명시돼 있다. ‘질병 외에 다른 외부 요인이 없다는 의학적 판단이 되는 경우만 병사를 선택한다’고도 적혀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사망진단서 작성 지침도 마찬가지다. ‘사망 원인에 심장정지 같은 사망의 양식은 기록할 수 없다’고 돼 있다. 심폐정지는 모든 사망자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라 사망의 종류로 볼 수 없다는 취지다.
유족들과 ‘백남기투쟁본부’ 측은 백씨가 경찰의 물대포라는 외부 요인으로 급성경막하출혈이 발생했고 그 합병증으로 사망했으므로 ‘외인사’가 맞는다고 본다. 백씨의 의무기록에는 ‘외상성 급성경막하출혈’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사망진단서에서 ‘외상성’이라는 표현이 빠진 점도 논란을 부추긴다. 박종태 전남대 의대 법의학과 교수는 “직접사인에 심폐기능 정지를 적은 것은 매뉴얼에 반한다”며 “지금까지 공개된 자료로는 외인사가 분명하다”고 말했다. 다만 “서울대병원이 백씨의 임상경과 등이 담긴 정보를 공개해야 하며 부검은 그 정보로 의혹이 해소되지 않을 때 고민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서울대병원과 대한의사협회는 말을 아끼고 있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유족들이 사망진단서 의혹에 대한 공개질의를 보냈기 때문에 14일 열리는 국정감사 전에 소명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김주현 의협 대변인도 “부검 결과에 앞서 입장을 밝히긴 어렵다”고 말했다.
법원이 백씨에 대한 조건부 부검영장을 발부한 상태지만 유족들은 여전히 부검에 반대하고 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는 “유족이 원치 않는 부검을 강행해 발병 원인을 기저질환으로 몰아가려는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고 밝혔다.
1996년 3월 29일 김영삼정부의 대선자금 공개와 등록금 동결을 주장하는 시위에 참여했다가 숨진 연세대 법학과 2학년 노수석씨 사건도 재조명받고 있다. 당시 부검으로 7군데의 피하출혈을 발견했지만 직접사인은 ‘심근병증으로 인한 급성심장사’로 최종 판명났다. 재판부는 이 부검 결과를 토대로 “경찰의 폭행과 과잉진압이 노씨의 사망을 일으켰다는 직접 증거가 없다”며 유족 측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한 바 있다.
전수민 민태원 이가현 기자
suminis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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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인사 vs 병사… 백남기 死因 논란 확산
입력 2016-10-03 00:03 수정 2016-10-03 0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