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트라우마.’
4년 전부터 김인경(28)에겐 이런 별명이 어디든 따라다녔다. 그녀의 얼굴만 보면 모두다 그렇게 수근거렸다.
2012년 4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란초미라지 미션힐스 골프장.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대회 크라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 마지막라운드에서였다. 16번홀(파4)과 17번홀(파3) 연속 버디로 1타차 선두여서 마지막 18번홀(파5)에서 파만 해도 우승을 할 수 있었다. 티샷을 페어웨이에 안착시킨 김인경은 정교한 아이언샷으로 5m 버디 퍼팅을 남겼다. 아주 쉬워 보이는 2퍼트! 그것만으로도 우승이었다. 첫 버디퍼트가 홀컵 30㎝에 붙었다. 갤러리도, 상대선수도, TV를 보던 시청자들도 다 그녀의 우승을 확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다음 순간 악몽이 펼쳐졌다. 파 퍼팅을 한 공이 홀컵을 돌아나왔다. 김인경은 손으로 귀와 입을 막았다. 결국 연장전으로 끌려간 그녀는 서희경에게 패했다. 그해 미국 골프 전문매체 골프채널이 선정한 올해의 10대 골프뉴스 6위에 오르는 굴욕까지 맛봤다.
그 이후 퍼트 입스(yips·공포증)라는 불치병이 찾아왔다. 이듬해 3월 열린 LPGA투어 기아클래식에서도 통한의 3퍼트로 우승을 날렸다. 그 때도 스페인의 베아트리체 레카리와 공동 선두로 18번홀(파4)에 나서, 절묘한 세컨드샷으로 홀 2m에 공을 올려 놨지만 거기서 퍼터만 3번을 쳤다. 루키 시절이던 2007년 4월 웨그먼스 LPGA 최종라운드에서도 1타 앞선 채 맞은 18번홀에서 1.5m짜리 파퍼팅을 놓쳐 연장에 들어가, 결국 눈물을 흘렸다. 당시 후배의 우승을 축하하려고 기다리던 김미현이 놀라는 표정이 TV 중계화면에 잡히기도 했다.
김인경은 극심한 퍼팅 난조로 모든 게 헝클어졌다. “퍼팅을 할 때마다 이상하게 눈 앞이 캄캄해진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올해까지 연장전에서 5전 전패였다. 결정적 순간 퍼팅 난조 때문이다. 김인경은 골프를 접을 생각까지 했다. 부모에게 “전쟁처럼 잔인한 스포츠를 꼭 해야 하느냐”고 펑펑 울기도 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녀는 잠시 골프를 접고 심리상담까지 받았다. 인도네시아의 유명한 단식원에 머물며 13일간 금식하며 명상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올해 세계랭킹이 42위까지 떨어졌다. 평균퍼트 수도 30.59개로 134위까지 떨어졌다.
김인경은 압박감을 덜 받기 위해 LPGA 투어를 접고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LET)로 무대를 옮겼다. 마음이 편해졌기 때문이었을까. 김인경은 지난달 ISPS 한다레이디스 유러피언 마스터스에서 LET 통산 3승째를 거뒀다.
그리고 2일 중국 베이징 레인우드파인밸리 골프클럽(파73·6596야드)에서 끝난 LPGA 투어 레인우드 클래식. 김인경은 그동안의 수모를 되갚으려는 듯 신들린 샷을 휘둘렀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이글 1개, 버디 6개, 보기 1개로 7언더파 66타를 쳐 최종합계 24언더파 268타를 기록했다. 고질병이었던 퍼팅도 최고였다. 15번홀(파4) 버디에 이어 16번홀(파5)에서는 2온 1퍼트 이글을 작성했다. 마지막 18번홀(파5)에서도 3m짜리 퍼팅을 성공시켜 버디를 낚아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김인경은 이로써 2010년 11월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 이후 무려 6년 만에 LPGA 투어 통산 4승째를 거뒀다. 김인경은 평점심을 유지한 끝에 퍼팅 난조를 극복하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녀는 “결과에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결과에 신경을 쓰면 내가 원하는 플레이를 하지 못하게 될 것 같았다”며 “최근 내가 원하는 경기를 할 수 있게 되면서 느낌이 좋았다”고 우승 비결을 전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
김인경 ‘30㎝ 퍼팅의 저주’ 끊다
입력 2016-10-02 18:41 수정 2016-10-03 00: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