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공부해봤자 뭐해요? 잘해봐야 내가 갈 수 있는 대학은 뻔해요. 어쩌다 좋은 대학에 간다고 쳐요. 좋은 대학에 입학했다고 좋아한 선배들은 취직이 안돼서 백수이고요. 이름 있는 회사에 입사했다고 잔치했던 삼촌은 틈만 나면 회사 때려치우고 싶어해요. 희망이 없는데 공부해서 뭐해요.”
조목조목 현실적인 증거를 가지고 말하는 사춘기 아이 앞에서 할 말을 잃고 함께 무력해질 때가 있다. 삼포세대를 넘어 꿈과 희망까지 무한정 포기하는 N포세대라 불리는 현실. 실제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현실은 온갖 암담한 지표들로 가득 차 있다. 이 아이가 헤쳐가야 할 세상이 포기할 것들로 가득한 세상이라는 것을 어떻게 부인할 수 있는가.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네가 걸어갈 길은 다를 수 있어. 열심히 노력하는 자에게는 분명히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 불확실한 좋은 결과를 담보로 아이 마음을 붙잡고 싶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궁색하기만 하다. “그래. 그게 현실이지. 그러니까 더 정신 차리고 지금 네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자.” 이런 당위성만으로는 현실의 늪에 빠져있는 아이를 일으켜 세우기에 역부족이다.
그러나 우리는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아이들이 믿고 있는 현실적 증거들은 보는 관점에 따라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다. 심리학자들의 발견에 의하면 우울증 환자의 경우 오히려 현실을 더 정확하고 냉철하게 인지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객관적 현실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 심리적 건강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은 현실을 약간 긍정적으로 왜곡하는 편향을 갖는다. 눈에 보이는 것을 하나의 해석으로 받아들이며 현실의 다양한 측면 중에서 긍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이러한 습관은 성경에서 하나님께 쓰임 받은 인물이 공통적으로 지녔던 요소이기도 하다. ‘사자와 곰의 발톱에서 건져주셨던’ 긍정적 경험에 근거해 거대한 블레셋 군대와 골리앗에 맞섰던 다윗(삼상 17:37)이 대표적 사례이다. 그것은 현실에 무지해서 생긴 무모함이 아니라 다층적 현실을 고려해 선택한 긍정적 편향이라는 건강한 특성이다. 성경은 이러한 특성을 믿음이라고 말한다.
사춘기 아이들은 인지능력의 확장과 함께 전에는 인지하지 못했던 현실의 부정적 측면을 과장되게 인식하는 경향을 갖는다. 그러나 아이들의 내면에서 갈구하고 있는 것은 바로 다층적 현실 속에서 긍정적 측면에 초점을 두는 건강한 습관이다.
자녀들 속에 있는 긍정적 측면에 주목해주는 습관이 필요하다. 비록 희미할지라도 자녀들에게서 희망의 씨앗을 알아보고 그 씨앗에 이름을 붙이고 초점을 맞춰주는 건강한 시각이야 말로 사춘기 아이들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확실한 길이다.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땅의 그루터기(사 6:13)’임을 바라보는 긍정적 편향, 믿음이라는 습관을 우리 어른들부터 먼저 연습했으면 한다.
한영주 <한국상담대학원대 15세상담연구소장>
[한영주의 1318 희망공작소] ‘믿음’이라는 긍정적 편향
입력 2016-10-03 20:28